발인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떠난 29일 오전 아침 해가 봉화산 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봉하마을 발인에서 안치까지]
상경길 운구차위로 노란 종이비행기 날려보내
3만여명 눈물의 배웅
저녁 8시 분향소서 넋위로 진도씻김굿 열어
상경길 운구차위로 노란 종이비행기 날려보내
3만여명 눈물의 배웅
저녁 8시 분향소서 넋위로 진도씻김굿 열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검은 29일 저녁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밤새 먼 길을 달려 30일 새벽 1시40분 그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뒷산 정토원 법당 수광전에 안착했다. 향나무 유골함에 담겨, 장남 노건호씨의 품에 안긴 채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49재가 끝나는 7월10일 집 뒷산 묏자리에 장사돼 영면한다.
영원처럼 긴 하루였다.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실은 운구차는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으로 가기 위해 29일 아침 6시께 봉하마을을 떠났다.
장의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 도착을 기다리는 조문객들을 위해 분향소 옆에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저녁 8시에는 분향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넋을 위로하는 진도 씻김굿도 열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운구 행렬을 위해 전구를 넣은 노란 풍선을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에 설치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기다리는 조문객들의 발길도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렸던 부엉이바위 등산로에 배치한 병력을 철수했다. 이에 따라 일부 조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새벽에 걸었던 등산로를 따라 부엉이바위에 올라가 뛰어내릴 당시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뿌렸다.
앞서 새벽 5시께 봉하마을에선 발인식이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목관이 들려 나왔다. 밤새 봉하마을을 지킨 조문객 3만여명이 이를 지켜봤다. 국군 의장대 10명이 태극기를 두른 목관을 검은색 캐딜락 운구차로 옮기자,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마을회관에서 먼저 나왔다.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손녀의 손을 잡은 부인 권양숙씨, 형 노건평씨 등 유족들이 차례로 마을회관 옆 분향소로 걸어 나왔다.
상주 건호씨가 분향소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 술잔을 올리자 유족 전체가 함께 절을 올렸다. 고인에게 술잔을 올린 뒤 5시17분께 유족들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200여m 떨어진 사저로 들어가 고인이 생전에 생활했던 서재와 침실 등을 돌았다.
유족들이 사저를 돌아보는 동안 운구차가 경복궁 영결식장으로 가기 위해 광장 들머리로 조금씩 움직이자 눈물을 참고 있던 조문객들은 “사랑합니다”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수천명의 조문객들은 미리 준비한 노란 종이비행기를 운구차를 향해 날렸다.
운구차가 사저로 간 유족들을 기다리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부르던 노래 ‘상록수’와 ‘타는 목마름으로’가 마을회관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노래에 이어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뭘 하실 거죠? 제가 대통령 되고 나면 여러분은 뭘 하지요?”라는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마을 방송에서 들리자 조문객들은 또다시 너도나도 울음을 터뜨렸다. 수천명의 조문객들과 ‘노사모’ 회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원통함을 달랬다.
아침 6시께 운구차와 유족 및 장례위원들이 탄 승용차 등이 봉하마을을 천천히 빠져나가자 여기저기서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가십시오” 등 노 전 대통령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일부 조문객들은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김해/김광수 최상원 이경미 기자 kskim@hani.co.kr
아침 6시께 운구차와 유족 및 장례위원들이 탄 승용차 등이 봉하마을을 천천히 빠져나가자 여기저기서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가십시오” 등 노 전 대통령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일부 조문객들은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김해/김광수 최상원 이경미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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