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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날 하늘에는, 검은 달이 떠 있었다

등록 2009-05-29 12:36수정 2009-05-29 14:29

김연수 소설가가 27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조문을 마친 뒤 마을길을 걷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연수 소설가가 27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조문을 마친 뒤 마을길을 걷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설가 김연수 ‘봉하마을에서’
지난 5월23일.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그날 달은 새벽 3시44분에 떠서 오후 6시18분에 졌다. 하지만 같은 날 아침, 부엉이바위 위에 홀로 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에 그 달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은 그믐이었으니까. 이로써 음력 사월의 빛은 모두 져버렸으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포부를 지녔던 한 사람의 삶이 모두 져버렸다.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검은 달이 떠 있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뒤, 나는 조문을 마치고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앉아 이따금 그 바위를 올려다보며 그가 쓴 글을 읽었다. 1975년,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한 서른 살의 그는 한 잡지에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썼다. “지나간 일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보인다지요? 산꼭대기에서는 힘겹게 올라온 가파른 산길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그날 바위 위에서도 그는 지나온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바라봤을까? 그렇지 않았겠지. 지고 지고 또 지기만 했던 삶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모두에게 버려달라고 말했듯이 그도 자신을 저버린 것이겠지.

바위 위에서 그는
지나온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바라봤을까
그렇지 않았겠지

그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다. 그 고독과 절망과 좌절의 깊이를 나는 결코 가늠할 수 없겠다. 그와 함께 영광과 환희를 모두 맛봤는데, 왜 치욕과 절망의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겠느냐고 마지막 순간까지 떠들어댔던 나는 이 가늠할 수 없음이 당황스럽다. 이제 나는 영영 그에게 가 닿을 수 없다. 죽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젠 다 틀렸다. 다시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지만, 그 두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뒤늦게 얘기한다. 죽음에 이르러 그의 삶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1990년 3당 합당에 맞서서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고 이의가 있다고 말했던 그는 이길 수 있는 서울이 아니라 질 게 뻔한 부산에서 출마하기로 결심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죽을 자리라도 가야 할 땐 가야 합니다 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내 속은 이미 숯덩어리처럼 새카맣게 타 있었다. 말이 그렇지 세상에 어떤 사람이 죽을 자리에 제 발로 가고 싶겠는가.”

두려움을 겁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게 얼마나 두려운 길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그는 그 길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냈다. 이 지독한 역설을 이해하는 데 정교한 논리나 이론은 필요없다. 그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남기겠다는 결심 정도면 된다. 이는 얼마나 상식적인 결심인지.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결심인지.

이 나라에서 두려움은 천대받는 감정이며, 고독은 부적응의 증거다. 홀로 그 두려움에 맞서는 일은, 무엇보다도 조롱거리다. 아이들에게 정의는 혼자서도 승리하며 진실은 스스로 밝혀진다고 가르치지만, 그다음 순간 우리는 두려움과 고독을 피해 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찾아 나선다. 힘도 있고 돈도 많으면서 더 많이 갖지 못할까봐 벌벌벌 떤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잘못을 봐도 모두들 입을 다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새벽 몸을 던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위에서 26일 새벽 한 등산객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김해/김명진 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새벽 몸을 던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위에서 26일 새벽 한 등산객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김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홀로 바위에 선 그에게
맞은편 산기슭이
보였으리라
젊은 아내와 아들과
함게 점심 먹던 시절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저마다 상처를 입으며, 고통 받고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그 사실들을 깨쳐가야만 한다. 승리하는 건 반칙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며 권력을 쥔 사람들 앞에서 진실은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그 무엇보다도 그게 무섭고 두려운 길이라면 절대로 가지 말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혼자 용기를 내는 일은 바보짓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게 다일까? 그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전부일까?

그리고 지난 27일 저녁, 해가 저문 봉하마을에는 아이의 눈썹처럼 가느다란, 어여쁜 초나흘 초승달이 떠올랐다. 초승달 아래, 조문하러 온 사람들의 행렬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23일 그믐의 아침을 보낸 내게 그건 이 세상의 끝까지 가야만 볼 수 있는 풍경 같았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 달이 이지러진다고 해도 다시 차오를 것이라는 걸. 그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무섭고 두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은 한 사람을 잊지 못하리라는 걸. 그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그러므로 이제 나는 어느 사랑의 시절에 대해서만 얘기하겠다.

부엉이바위에 서면 봉하마을 들판 너머 작은 산이 보인다. 이십대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기에 마옥당(摩玉堂)이라는 작은 집을 손수 짓고는 법률을 공부했다. 그에게는 한마을에서 살았던 아내가 있었고, 막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점심 무렵이면 아내와 아이는 들판을 가로질러 그가 먹을 밥을 들고 왔다. 점심을 먹는 동안, 아이는 재롱을 부렸다.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무렵이면, 그는 낙조를 바라보며 들판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해 오월에도 내가 찾아간 그날 오후처럼 동풍이 온 들판을 휩쓸었을 것이다.

그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책에다 썼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다른 공부를 하고 싶으면 네 나이 40살까지는 내가 책임지마. 그래야 할 형편이면 내가 정치를 그만두고라도 돈을 벌어 너를 밀어 줄 테다.” 그런 말들이, 동풍에 휩쓸렸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뒤에 그가 계획했던 소소한 행복들, 소망들, 즐거움들도 그렇게 모두 동풍에 휩쓸렸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남았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미안해하지 마라.”

23일 아침,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검은 달이 떴겠지만 홀로 바위에 선 그에게 맞은편 산기슭이 보였으리라는 사실이,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시절이 보였으리라는 사실이 이제 나를 위로한다. 그래서 덜 아프다. 우리에게 사랑했던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신동엽의 ‘산문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그를 위로하고 싶다.

잘 가세요 나의 대통령
그동안 행복했어요
이젠 두려움도
절망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신동엽 시인은 내가 많이 부러울 것이다. 신동엽 시인은 이를 꿈이라 여겼겠지만, 내게는 현실이었으니까.

잘 가세요, 대통령. 나의 대통령. 그동안 행복했어요. 고향마을에서 주신 밥도 잘 먹었구요, 웃는 모습도 많이 뵈었어요. 그래요, 미안해하지 않을게요. 좋았던 일들만 기억할게요. 이젠 두려움도 절망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고마웠어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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