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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마음에 묻힌 노무현

등록 2009-05-26 13:48수정 2009-05-26 13:49

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애인 차별금지법 서명식 및 2007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에서 장애인 차별금지법재정 추진연대 박경석공동대표가 플랜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자 유시민장관등이 제지하고 있다.
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애인 차별금지법 서명식 및 2007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에서 장애인 차별금지법재정 추진연대 박경석공동대표가 플랜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자 유시민장관등이 제지하고 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대통령 앞 기습시위
펼침막 펼치자 차분하게 “시간 드릴게요”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야속함도 없지 않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장애인 인권을 위한 가장 중요한 법률 세 가지가 참여정부 때 통과됐습니다.”
박경석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
박경석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

2007년 4월4일 박경석(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서명하던 이날, 박 대표는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는 서명식 도중 미리 준비한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하라’는 내용의 펼침막을 펼쳐 들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고 얘기하지만 장애인은 교육조차 못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굶고 있습니다”라며 큰 소리로 호소했다.

이 돌발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두 차례나 “잘 알겠습니다”라고 차분하게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의견을 말할) 시간을 달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말씀하실 만큼 시간을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소동이 정리된 뒤 노 전 대통령은 “장애인 정책은 매우 중요하며 장애인이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박 대표는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사흘째인 25일, 박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있을 때 이 문제가 조금이라도 더 다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노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하면 가혹하다고 느낄 정도”라며 “다시 청와대에 갈 기회가 있더라도 그런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알았다는 박 대표는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있다가 물러나 정치권의 무서움과 야비함을 느끼게 되면서 결국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제주시 봉개동 소재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58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 행사를 마치고 관계자 및 유가족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제주시 봉개동 소재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58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 행사를 마치고 관계자 및 유가족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제주 산딸나무 피는 5월에 오라더니…
공식사과로 유족 한 풀어준 정치인

이중흥 4·3유족회 제주시지회장

“꽃피는 5월에 오라고 하셨는데….”

이중흥(62·사진) 4·3유족회 제주시지회장은 말끝을 잇지 못했다. 이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는 순간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1948년 4월3일 제주에서 일어난 4·3 사건으로 고통을 받아온 유족들에게 노 전 대통령은 특별하다. 2003년 10월 노 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4·3’이라는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한 것은 반세기 넘게 맺혔던 제주도민들의 한을 쓸어주기에 충분했다.

이 회장은 유족회 회원 등 15명과 함께 지난해 8월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다. “4·3문제 해결에 대한 고마운 말씀을 직접 드리고 싶었는데, 애초 면담시간인 10분을 넘겨 30분이나 만나주셨다.”

이 회장 등이 고마움을 전하자, 노 전 대통령은 “4·3사건의 아픔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노력했을 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놓은 것을 나는 열매만 따먹었습니다”라며 겸손해했다고 이 회장은 전했다.

이 회장 등 유족들은 지난해 11월 제주산 산딸나무를 갖고 봉하마을을 찾았다. 유족들이 “5월 말이면 산딸나무는 꽃을 피우고, 그 빨간 열매는 4·3의 아픈 마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하자, 노 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씨는 “꽃이 피는 5월에 오세요”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노동자가 죽던 날, 바람처럼 나타난 사람
부산·경남 노동계 든든한 조력자

백순환 대우조선노조 부위원장

1987년 8월22일 경남 거제의 옥포관광호텔에서는 대우조선 노사 대표가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었다.

대우조선 노동자 3000여명은 “김우중 회장 나오라”고 소리치며 호텔로 향했다. 갑자기 경찰의 최루탄 사격이 이어졌다. 최루탄은 한 젊은 노동자의 오른쪽 가슴을 맞고 튕겨나와 매캐한 연기를 내뿜었다. 쓰러진 사람은 대조립부 외업반에서 일하던 이석규(당시 21살)씨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본 게 그 직후였어요. 노 전 대통령은 배를 타고 거제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이 어찌 됐느냐’고 물었죠.” 백순환(49·사진) 대우조선노조 부위원장은 당시 직장에서 쫓겨난 해고 노동자였다. 백 부위원장과 ‘노무현 변호사’는 택시를 타고 곧장 숨진 이석규씨가 안치된 옥포대우병원으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 전태일씨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 이상수 전 의원(당시 변호사) 등과 함께 ‘이석규 열사 민주노동자장’의 장례위원회를 구성했고, 연이어 이씨의 사인 규명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은 그를 노동쟁의조정법의 독소조항인 ‘제3자 개입 금지’ 혐의로 구속했고, 그는 차가운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백 부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은 부산·경남 노동계의 든든한 법률적 조력자였다”고 회상했다.

백 부위원장도 노 전 대통령에게 법률적 도움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백 부위원장이 대우조선을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소송의 담당 변호사였다.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주례를 부탁했는데, 자기는 젊어서 안 된다며 웃으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엊그제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먹먹했어요. 그렇게 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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