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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비움의 역정 마지막 항거

등록 2009-05-25 15:05수정 2009-05-25 16:27

박창식 선임기자가 본 ‘노 전 대통령의 선택’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만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평생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아온 분이긴 하지만, 이번에 이것마저 내던질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또다른 측근은 “수많은 참여정부 사람들을 도륙하는 것을 막으려는 생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행동을 하신 것 아닌가 싶어서 남은 우리들이 괴롭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번 행동에는 기본적으로 ‘항거’의 의미가 담겼다. 측근들 말로는,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직접 겨누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을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이잡듯이 뒤지는 것을 가장 괴로워했다”고 한다. 다른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은 우발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곰곰이 생각해서 뭔가를 도모하는 성격”이라며 “자기 한 몸을 던져 정치보복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박연차 회장 사건과 관련해선 실체와 관계없이 전직 대통령에게 수모를 주는 ‘정치적 행태’가 문제였다. 이것 말고도 그동안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참여정부 인사들이 알게 모르게 뒷조사를 당해왔다. 장례를 준비하는 인사들 사이에서 ‘정치보복에 의한 살인’이란 사건 규정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되돌아보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자신을 비우는 ‘고독한 항거’의 연속이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이전에는 부산 국회의원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에 거듭 도전했다. 언론권력 문제를 제기하며 <조선일보>와 한판 싸움을 벌였다. 남들이 선뜻 따르지 못하는 고독한 싸움들이었다. 그의 ‘내던지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대통령직을 내던질 가능성을 비치던 끝에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에 직면했다.

노 전 대통령이 온몸을 내던지는 승부를 거듭 시도한 것은 비주류 출신으로서 정치권에 이렇다할 세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자신을 벼랑 끝에서 내던지는 승부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 선택도 ‘고독한 항거’를 또다시, 마지막으로 시도한 성격이 엿보인다.

과거 그는 처음에는 무모한 듯 했지만, 몸을 던지는 승부를 통해 결국 성공을 거둬왔다. 대통령에 당선됐고, 탄핵을 딛고 총선 승리를 일궜다. 이번에도 그의 죽음은 한국사회의 민심 흐름에 큰 충격파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정치 검찰’의 잘못된 행태와 인권과 민주주의 토대를 흔드는 역주행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길고도 질긴 항거를 자신의 어깨에서 마침내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났다. 그가 죽음으로 웅변하고자 했던 마지막 항거가 어떻게 결실 맺을지는 그가 끝까지 믿고 기댔던 ‘사람’의 손에 달렸다.

김해/박창식 선임기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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