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양숙 여사는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36년간 희로애락을 나눈 동반자였다.
경남 마산 출신인 권 여사는 계성여상 중퇴 후 부산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1973년 노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당시 권 여사 집안에선 특별한 직업도 없는 고시준비생이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노 전 대통령 가족도 권 여사 부친의 좌익 전력을 들어 반대했지만 `서로 물불을 안가리고 좋아해' 결혼식을 올렸다는게 노 전 대통령의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에 소개된 내용이다.
권 여사의 뒷바라지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사법고시 합격으로 이어졌다.
이후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재야 변호사의 길에 들어서기 전까지 변호사의 부인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신혼생활에 대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나의 주인이 되어 버렸고, 주인으로 군림하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꿈을 좇던 그때의 처녀 양숙씨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훈육 주임을 닮았다고나 할까"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98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인 부인으로서도 잠깐 행복을 누리기도 했지만, 1992년 14대 총선과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함께 고통을 겪었다.
정치인 부인으로서의 권 여사의 삶은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화려하게 꽃피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권 여사는 대선 과정에서 부친의 좌익 경력이 논란이 됐을 때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말한 것을 두고 "이 한마디가 정치인 아내로서 겪어온 모든 고통을 보상해 주는 듯했다"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퇴임후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회장으로부터 받은 100만달러를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며 권 여사의 책임으로 돌렸고, 권 여사는 전직 대통령 부인으로서 사상 두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권 여사는 극심한 심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되기 직전에는 "지금까지 살림은 내가 맡아와서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 모두 내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한동안 울먹였고,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출발할 때는 현관까지 따라나오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 하지말라"고 당부했지만 36년 반려자를 잃은 권 여사는 극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권 여사는 이날 오전 9시25분께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한 후 실신했고,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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