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 봄비가 내린 12일 망월동 5·18 제3묘역(옛 망월동 묘지)에 서 있는 조각상에 맺힌 빗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이 ‘여학생상’은 5·18 당시 시민군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조각 작품 가운데 일부다. 광주/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5·18 29돌 아물지 않는 상처]
5·18 피해 아버지의 자살…
어느 ‘슬픈 가족사’ 5·18 민주화운동이 오는 18일 29돌을 맞는다. 1980년 그날 군사독재의 총부리에 맞서 일어섰던 채소장수, 트럭 운전사, 고등학생, 다방 종업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이들 가운데는 고문과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적지 않다. 5·18기념재단의 의뢰로 생명인권운동본부 조용범 박사(심리학) 연구팀이 10명의 5·18 자살 피해자에 대한 ‘심리학적 부검’을 진행했다. ■ 2009년 진서(17·이하 모두 가명)는 지금 소년원에서 제빵기술을 배우고 있다. 지난해 여름 친구들과 또래 폭행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에 왔다. 전남 목포시에서 할머니, 고모, 동생과 함께 살았던 진서는 지난해 4월께부터 자주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용돈은 적었지만 씀씀이는 헤펐다. 할머니와 집안 어른들이 ‘어디서 나오는 돈이냐’고 추궁할 때면 대들면서 욕설을 뱉기도 했다. 심리전문가는 그에게 품행장애가 있으며, 성격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진서는 “애교 많은 동생과 비교당하는 게 싫고, 고치고 싶은데 잘 안돼 속상하다”고 말했다. 동생 민서(14)는 생후 7개월 때 열병을 앓은 뒤 지금까지 한 번도 걷지 못했다. ‘척수 근위축증’이라는 희귀병으로 1급 신체장애를 안고 산다. 민서를 보살피는 고모(57)는 “저것만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민서에게 소원이 있다면 아빠를 다시 보는 것이다. 민서는 “다정한 아빠가 옆에 있다면 행복할 텐데”라고 말했다.
■ 2004년 최규영(당시 40)씨는 그해 10월 부산 신정동에서 살충제를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이종사촌 김아무개(43)씨한테 100만원을 빌리려다 거절당한 뒤였다. 최씨가 숨지기 전날 멀쩡한 길거리를 보면서 “데모하는 영혼들이 개천가에 우글우글한데 나를 오라고 부른다”고 말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최씨는 한 해 전인 2003년부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집에서 술을 마셨다. 매일 소주 2~3병꼴이었다. 취하면 “죽은 사람들이 보인다”거나, 벽에다 대고 “잘못했어요”라며 연방 고개를 조아렸다. 작은딸을 안고 울기도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을 잊으려고 시작한 술이었지만 독이 되었다. 아들이 죽은 뒤 어머니 박예분(77)씨는 유품을 정리하다 버린 줄로만 알았던 이혼한 며느리의 사진을 아들이 따로 고이 간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많이 그리워했나 보다.” 동생은 1급 신체장애
언니는 지금 소년원에 있다 농약 마시고 떠난 아빠
가족은 그렇게 둘만 남았다 성치않은 몸에 공사판 전전
생전 그리도 열심이셨는데… 데모했다고 끌려가 고문
시작은 바로 그날 5·18이었다
5·18 피해 아버지의 자살…어느 ‘슬픈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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