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 응암9구역 주택재개발지구에서 1월30일 한 주민이 철거가 진행돼 뼈대만 남은 주택 앞을 지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은 개발중…‘제2 용산’ 곳곳에]
② 응암 재개발 영세 가옥주
② 응암 재개발 영세 가옥주
권경택(37)씨는 지난달 8일 “집을 비워 달라”는 법원의 통지문을 받았다. 서울서부지법이 보내온 ‘강제집행 예고장’에는 “채권자인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 신청이 있으니 13일까지 자진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이행하지 않을 경우 예고 없이 강제 집행되고,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됩니다”고 적혀 있었다. 권씨는 지난 10년 동안 이 집의 주인이었고 ‘서울 은평 응암 9구역 주택재개발지구’ 재개발 조합의 조합원이다. 그는 “세상에 집 주인에게 집을 나가라니 이런 법도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14.6평 주택지분 감정평가액 고작 1억3천만원
33평 아파트 4억 넘어…추가 분담금 ‘눈덩이’ 집뺏기고 이주비용도 평가액의 60%만 받아
“용산참사 나에게도 닥칠 일 같아 무섭네요”
권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비극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6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대대적인 서울 재개발 계획인 ‘뉴타운 정책’을 발표했다. 수십년 동안 개발에 소외된 강북 변두리 집값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2005년 12월 ‘주택재개발지구’로 지정되는 권씨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씨는 “처음 재개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시공사로 선정되는 현대건설 사람들이 마을을 다니며 “헌집 주면 새집 준다”고 설득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곧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우편물과 전화, 설명회 등을 통한 대대적인 재개발 홍보도 이뤄졌다. 권씨를 포함한 주민 636가구는 “설마 집 주인들에게 손해야 가겠느냐”는 생각에 큰 의심 없이 조합에 가입했다. 지분 14.6평(약 48㎡)짜리 집에 살던 권씨는 “당시 조합에서 ‘33평 아파트는 큰 부담 없이 들어가시겠다’고 해 입주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씨의 장밋및 꿈이 깨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합에서 평가한 권씨 집의 감정 평가액은 1억3천여만원, 33평형 아파트의 원주민 분양값은 4억2천만원이었다. 권씨는 아파트 입주를 위해 분양값 4억2천만원에서 1억3천여만원을 뺀 2억8천만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됐다. 권씨는 “도저히 그 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시설관리 계약직으로 연봉 3500만원을 받는다. 권씨의 부인 김해영(30)씨는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대출받은 2500만원의 빚이 지금도 남았는데, 그런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겠느냐”고 말했다. 분양권을 팔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 지역 프리미엄은 이미 1천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주변에서 1억4천만원으로 살 수 있는 집은 없었다.
주민들은 “조합 간부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때 고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 주인들의 집 소유권이 조합에게 넘어가는 과정인 ‘관리처분 계획’에 대한 주민 총회가 열린 것은 2007년 10월25일이었다. 그러나 감정가는 그로부터 이틀 뒤인 27일에 주민들에게 통보됐다. 주민들은 자기 집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재개발이 끝난 뒤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얼마의 돈을 추가로 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총회를 치른 셈이다.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1월 초 새 임시총회를 요구하는 332가구의 서명을 받았지만 조합은 이를 묵살했다. 구청에도 관리처분 계획의 불법성을 하소연했지만, 구청은 2008년 3월 결국 인가를 내줬다. 그리고 지난해 12월1일 공사가 시작됐다. 권씨 집 주변은 이미 폐허로 변했다. 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쓰레기에서 악취가 피어오르고, 공사 소음에 아이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한창 겨울이지만, 권씨는 당장 살 곳부터 문제다. 조합은 권씨에게 분양 계약 때 이주 비용으로 감정평가액의 60%인 7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마저도 빚 2500만원과 아파트 분양 계약금 2800만원 등을 빼면 실제 받는 돈은 1700만원뿐이다. 그 돈으로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 버텨내야 한다. 권씨는 “조합에서 분양계약 시한을 넘기면 10%가 넘는 연체 이자를 물어야 한다고 닥달해 왔지만, 시한을 넘도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비상대책위원장인 이미정(49)씨는 “주민 대부분이 초반에 전매를 하고 나가거나 ‘싸운다고 바뀌겠느냐’며 체념했다”고 말했다. 남은 집은 이제 10여 가구다. 권씨는 “1999년부터 세 들어 살던 집을 2001년 내 집으로 장만했을 때는 꿈만 같았다”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를 보니까, 곧 나에게도 닥칠 일 같더라고요. 밖에서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잖아요. 정말 외롭고 무섭네요!” 권오성 이경미 기자 sage5th@hani.co.kr
33평 아파트 4억 넘어…추가 분담금 ‘눈덩이’ 집뺏기고 이주비용도 평가액의 60%만 받아
“용산참사 나에게도 닥칠 일 같아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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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조합 간부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때 고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 주인들의 집 소유권이 조합에게 넘어가는 과정인 ‘관리처분 계획’에 대한 주민 총회가 열린 것은 2007년 10월25일이었다. 그러나 감정가는 그로부터 이틀 뒤인 27일에 주민들에게 통보됐다. 주민들은 자기 집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재개발이 끝난 뒤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얼마의 돈을 추가로 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총회를 치른 셈이다.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1월 초 새 임시총회를 요구하는 332가구의 서명을 받았지만 조합은 이를 묵살했다. 구청에도 관리처분 계획의 불법성을 하소연했지만, 구청은 2008년 3월 결국 인가를 내줬다. 그리고 지난해 12월1일 공사가 시작됐다. 권씨 집 주변은 이미 폐허로 변했다. 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쓰레기에서 악취가 피어오르고, 공사 소음에 아이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한창 겨울이지만, 권씨는 당장 살 곳부터 문제다. 조합은 권씨에게 분양 계약 때 이주 비용으로 감정평가액의 60%인 7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마저도 빚 2500만원과 아파트 분양 계약금 2800만원 등을 빼면 실제 받는 돈은 1700만원뿐이다. 그 돈으로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 버텨내야 한다. 권씨는 “조합에서 분양계약 시한을 넘기면 10%가 넘는 연체 이자를 물어야 한다고 닥달해 왔지만, 시한을 넘도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비상대책위원장인 이미정(49)씨는 “주민 대부분이 초반에 전매를 하고 나가거나 ‘싸운다고 바뀌겠느냐’며 체념했다”고 말했다. 남은 집은 이제 10여 가구다. 권씨는 “1999년부터 세 들어 살던 집을 2001년 내 집으로 장만했을 때는 꿈만 같았다”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를 보니까, 곧 나에게도 닥칠 일 같더라고요. 밖에서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잖아요. 정말 외롭고 무섭네요!” 권오성 이경미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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