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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비정규직법 악용…장벽만 높아졌다

등록 2008-10-31 19:46수정 2018-05-11 16:28

서울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일 오전 서초동 병원 로비에서 고용 안정과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든 채 농성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일 오전 서초동 병원 로비에서 고용 안정과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든 채 농성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직접 고용→파견회사로 발령→계약 해지 수순
간호보조원 줄줄이 쫓겨날 판…정규직도 위기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농성현장

지난 29일 찾아간 서울 강남성모병원은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어귀에 천막이 보였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한국 사회의 눈에는 이미 익숙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거처다. 천막 농성 43일째. 금속(기륭전자·포스코 …), 철도(고속철도·새마을호 승무원), 유통(이랜드), 공공사무금융(코스콤) 등에 이어 의료 부문으로 확장되는 데 강남성모병원이 기여했다.

침대 시트 갈기, 처치 물품과 기구를 소독하고 정리하는 일, 검사물을 옮기고 약 타오는 일 등 병원의 궂은일을 해 온 간호보조원들. 강남성모병원은 2년 계약 만료를 이유로 9월30일 28명을 쫓아냈고 앞으로 모두 65명을 쫓아낼 참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파견업체에 소속됐던 건 아니다. 병원 로비에서 농성 중인 홍석(37)씨는 2004년 3월 강남성모병원에 직접 고용됐으나 2006년 10월 파견회사 직원으로 바뀌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2년 동안 일한 파견 근로자는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지만, 4년 반 동안 일한 그는 쫓겨났다. 법 정신은 2년 동안 지속된 업무는 상시 업무이므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2년이 최장 계약기간이 된 것이다. 법의 미비점을 악용하는 쪽은 사용자인가, 노동자인가.

강남성모병원은 돈을 더 주더라도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를 ‘자르기 쉽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쪽에 든다. 노동은 필요하지만 노동자는 필요 없다는 것.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설 자리가 없다. 병원 인터넷 사이트에서 방문자들은 “가톨릭 정신을 전파한다는 사명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생명 존중의 의술을 펼치며 …” 등이 담긴 병원장 인삿말을 읽을 수 있고, 노동자들의 농성과 관련해 병원 쪽이 붙인 벽보에서는 다음 문구를 읽을 수 있다. “현재 농성 중인 이들은 본원이 가톨릭 교회기관이라는 점을 악용해 가톨릭의 명예와 품위를 손상시키면서 불법적이고 비상식적인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

싸움은 오래 갈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의 정의’라는 법은 미비한 채 사용자 편이고 가톨릭의 권위는 난공불락이다. 그 권위에 2002년 파업 투쟁으로 맞섰다가 패배한 뒤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는 정규직 노조의 연대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지만 파견 노동자들은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에 가입해 있다. 10월29일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서울지역본부장과 병원장, 행정부원장 사이에 면담이 있었지만 서로 이견만 확인했을 뿐이다.

“기륭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오래 싸우게 될 줄 몰랐을 거예요.”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은 이 말을 주고받은 고3, 고1 자녀를 둔 박정화 조합원, 노조 활동을 이유로 파견업체 본사로 발령을 받은 홍희자 조합원의 얼굴만이 아니었다.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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