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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도 모르는 낯선 ‘우리 초상’이 꿈틀

등록 2008-07-03 13:24수정 2008-07-08 16:11

소설가 신경숙.
소설가 신경숙.
신경숙이 본 ‘매그넘 코리아’
무릎꿇고 엎드리고 기어서 생의 결핍 채운
가까이… 가까이 다가선 이방인, 객관의 눈
일년 전쯤인가? 예술의 전당에 나갔다가 우연히 ‘로버트 카파’전을 보았다. 무심코 전시회장에 들어갔다가 두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만약 당신이 찍는 사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이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파의 이 말이 먼 곳에 있는 나를 홀려 그곳으로 인도한 것 같았다.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렇게 아프게 들린 적이 없었다. 마치 사진이 한순간을, 그야말로 “결정적인 한순간”을 포착하듯이 생의 결핍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카파의 그 말은 단숨에 꿰뚫게 해주었다. 그는 인도차이나 전쟁에 종군해 들판을 걸어가는 병사들을 좀더 가까이 다가가 찍으려다가 지뢰를 밟고 죽었다. 죽음의 대가로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누구도 찍을 수 없었던 두 장의 사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그는 두 장의 사진을 더 남겼다”라고 써서 내가 가장 자주 열고 닫는 책상 서랍의 문에 붙여 두었다. 서랍을 열고 닫을 때마다, 그러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문장을 읽었다.

그 로버트 카파를 비롯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모어 등이 설립한 매그넘 소속의 사진작가 스무 명이 찍은 2007년 한국의 모습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는 일은 특별했다. 방대한 양에 압도당하는 순간에도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국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도 했다. 매그넘이 그동안 깊은 울림을 주며 사진의 역사를 새로 써 왔듯이 그들이 찍은 한국도 기록물로서, 혹은 작품으로서 새롭게 쓰여졌다. 그냥 ‘서울 명동’이라고 써 놓았는데도, 한 순간을 포착해 놓았을 뿐인데도, 사진 속의 명동은 남대문 시장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사진 한 장으로 우리의 사회적 관심이 무엇인지, 이방인의 눈에 우리의 전통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우리의 문화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한국 사회의 모든 면면들이 드러나고 있어 눈을 뗄 수가 없다. 수많은 사진들이, 피사체를 발견하고 동물적 감각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앵글을 맞추는 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지하게 한다. 당연히 매그넘의 작가 스무 명은 한국과 소통하기 위하여 부단히 달려가고 엎드리고 기어서 가까이 다가갔을 것이다. 그랬으므로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큰 소통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찍는 사진마다 수많은 담론을 생산해 내며 지구촌의 역사를 앵글에 담아온 매그넘 소속의 사진작가 거의 절반이 한국 찍기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그들의 시선에 포착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내면으로 꿈틀거리며 되살아나는 걸 지켜보는 건 감동적이다. 우리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어서인가. 새 운동화를 신고 국토순례를 하고 난 기분이다. 사찰에서부터 거리의 간판까지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이방인들이 포착한 우리의 초상은 새삼스럽게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음식을 저렇게 먹고 절을 저렇게 하며 공항에서 저러고 앉아 있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 매우 친숙할 것 같지만 때로 아주 낯선 모습들이 찍혀 있어 마치 나도 아직 모르는 나를 보듯 살펴보게도 된다. 카파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를 찍은 개성 넘치고 독립적인 매그넘 작가들은 한강 시민공원과 인천공항, 제주도의 사람들에게, 학교 안의 여학생들에게, 설악산과 비무장지대와 자동차와 배를 생산해 내는 공장들과 담배를 들고 있는 한국 배우 문소리에게까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거리의 쓰레기와 바닷물에게까지도.

우리는 이 사진들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객관적인 우리의 초상을 갖게 되었다.

소설가

‘매그넘코리아’전 개막…다음달 24일까지 예술의 전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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