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시국미사를 마친 사제단과 시민들이 촛불과 펼침막을 들고 을지로 입구를 가득 메운 채 행진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대통령이 국민 속이는 현실 매우 큰 불행”
시민들 “사제단 지지에 용기와 자신감”
시민들 “사제단 지지에 용기와 자신감”
서울시청 앞 광장이 다시 3만여개의 촛불로 밝혀졌다.
경찰이 광장 일대를 원천봉쇄한 지 하루 만인 30일 저녁 7시30분께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비상시국미사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사제단은 정부가 국민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한 것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경고했다.
“10여명이 모일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오셨네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모이면서 음향기기 재정비 문제로 애초 오후 6시께 시작될 예정이던 미사는 1시간30분 가량 늦게 시작됐다. 전국에서 모인 사제단 신부 200여명과 수녀 100여명, 신도 800여명이 참석한 이날 미사에는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이 함께하면서 시청 앞 광장과 그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이날 200여명의 신부들은 흰색의 장백의를 입고 신부를 상징하는 영대를 어깨에 걸친 채 미사에 참석했다. ‘희망’을 상징하는 초록색 영대와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 영대가 대부분이었다. 미사가 시작되자 신부들은 ‘고시철회 명박퇴진’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시민들 사이를 뚫고 태평로 쪽에서 시청 광장을 가로질러 단상에 올랐다.
사제단은 이날 미사에서 국민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전종훈 신부는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이라는 시국 성명서에서 “대통령이 국가 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해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매우 큰 불행”이라며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조·중·동에 대해서도 “정론직필의 본분을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사제단의 발언에 곳곳에서 시민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터져나오는 박수에 사제단이 발언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사제단은 “무장경찰들의 폭력으로부터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고자 한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날 사제단은 봉헌 노래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성가로는 <광야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선택했다. 서광윤(48)씨는 “사제단은 시민의 역량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제단의 지지에 시민들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시국미사를 마친 사제단은 촛불을 든 시민들과 함께 거리행진에 나서 남대문과 한국은행을 거쳐 밤 10시께 다시 시청으로 돌아왔다. 행진을 마친 사제단 상임위원회 신부 10여명은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인국 신부는 “속을 비우면 욕심이 없어져 잘 보이는 법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못 보는 게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시국미사 내내 서울광장 주변에선 경찰 정보과 형사 10여명이 미사 규모와 분위기 등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애초 경찰은 3500명 정도가 미사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규모 인파가 몰리자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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