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지목에도 검거 미적…‘도주 방조’ 비판
보수성향 단체들의 ‘반촛불 집회’가 마침내 ‘각목 폭력’ 사태로 번졌지만, 경찰은 폭력 용의자 검거 등 수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24일 목격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23일 오후 5시30분께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정문 앞에서 ‘공영방송 지키자’는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던 박아무개(49·여)씨가 대한민국 어버이연합회(연합회) 소속 회원 6~7명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 단체 회원들은 1m 길이의 손팻말용 각목으로 박씨의 머리 등을 때린 뒤 박씨가 쓰러지자 발로 밟았다. 박씨는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빨갱이에게 맛을 보여주자’고 하더니 누군가가 손팻말 각목으로 머리를 내리쳐 넘어진 상태에서 발길질을 당했다”고 말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박씨는 곳곳에 멍이 들었고 허리와 목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폭력을 제지하던 다음 아고라 회원 20여명과 연합회 회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시민 강아무개(42)씨도 귀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이에 대해 추선희 어버이연합회 사무총장은 “우리 회원 2명이 박씨 옆에서 팻말 시위를 하려고 갔다가 (박씨와) 부딪쳤을 뿐, 각목으로 때리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앞서 보수단체 회원들은 각목을 가득 실은 2.5톤 트럭을 몰고와 시위를 벌였고, 곳곳에서 각목을 들고다니는 모습이 목격돼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추 사무총장은 “각목은 손팻말을 만들기 위한 것이며, 휘두르기 위해 들고 다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미온적 대처도 사태를 키웠다. <한겨레>가 입수한 현장 동영상을 보면, 박씨를 때린 한 70대 남성을 시민들이 현장에 붙잡아 경찰에 인계하려 했으나 경찰이 미적거리는 사이 이 남성은 현장을 떠났다. 동영상에는 영등포경찰서 소속 형사가 등장하고, 한 시민이 “경비대장님, 이 사람이 때린 사람이에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병록 영등포서 경비과장은 “양쪽 회원이 서로 뒤엉키는 등 혼란스런 상황이어서 (용의자를) 인계받지 못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경찰관은 “박씨가 보수단체 집회 장소 근처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서너 차례 ‘폭력이 유발될 수 있으니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밤 9시께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충돌 소식을 듣고 한국방송 앞으로 옮겨와 보수단체와 또다시 마찰을 빚었다. 박찬성 반핵반김 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수술했던 눈을 시민들에게 맞아 다시 수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오전 <한국방송> 앞에서 ‘보수단체 각목 난동과 경찰 비호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폭력 난동자들을 즉각 수사하고, 범인 도피와 범행을 비호한 경찰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경찰은 지난 13일 발생한 고엽제전우회의 문화방송 앞 폭력 사태와 관련해서도 내사 중이라고 밝혀, 촛불시위에 대한 발빠른 수사와 비교됐다.
최현준 송경화 기자 haojune@hani.co.kr
최현준 송경화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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