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 지새우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비상국민행동’에 참가해 밤을 지샌 시민들이, 비가 내리는 22일 새벽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촛불 어디로 가나
거리 나선 수만명 ‘거친 실망감’
정부 ‘감성 모드’…보수층 이탈 전망도
대책회의 24·25·27일 잇단 토론회 준비
거리 나선 수만명 ‘거친 실망감’
정부 ‘감성 모드’…보수층 이탈 전망도
대책회의 24·25·27일 잇단 토론회 준비
‘추가 협상’ 이후 촛불민심의 향방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의 촛불 양상으로만 보면 ‘민심안정’을 기대한 정부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로 보인다. 지난 10일 ‘100만 촛불대행진’을 고비로 주춤하던 촛불이 다시 광장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22일 오후 7시까지 이어진 ‘48시간 국민행동’ 기간 수만명의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밤을 밝혔다. 10일 이후 협상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분위기에 비까지 겹쳐 한때 1천여명 수준으로 떨어졌던 촛불의 수는 21일 밤 광우병 국민대책회(대책회의)의 추산 10만명으로 늘어났다. 22일 밤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든 20대 남자는 “국민들이 더이상 뭘 어떻게 해야 정부가 말을 알아듣는 거냐”며 거친 한숨을 토했다.
촛불은 또 이전보다 더 거칠어졌고, 구호도 훨씬 과격해졌다. 21일 밤에서 22일 새벽까지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한 시민들은 밧줄을 ‘전경 버스’에 묶고 잡아 끌었고, 버스 위에서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며 전경 버스를 넘어 스스로 경찰 쪽으로 몸을 던지는 40대 남자도 눈에 띄었다. 경찰을 비난하는 구호는 ‘폭력 경찰’에서 ‘살인 경찰’로 변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사회학)는 “추가 협상에 실망한 사람들의 인내심이 한계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시민들과 직접 충돌에 매우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던 경찰도 강경 대응으로 맞서며 시민들을 자극했다.
대책회의는 장고에 들어갔다. 대책회의 안에서는 그동안 공언해 온 대로 ‘정권 퇴진운동’을 밀고나가자는 ‘강경론’과 사태 추이를 관망하자는 ‘온건론’이 맞서 있다. 그러나 ‘광장’의 여론이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정부 대책이 실제로는 빈그릇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상당히 내용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감성 모드’로 진행된 대통령의 사과와 청와대 수석들의 물갈이로 전통적인 보수층이 촛불 대오에서 이탈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생활 정치’는 전통적인 ‘이념’ 투쟁과 달리 상황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는 특성을 갖는다.
정부는 ‘추가 협상’으로, 대책회의는 20일로 ‘재협상 시한’을 못박는 것으로 서로가 꺼내들 수 있는 패를 다 보여 준 상황이다. 대책회의는 ‘끝장 투쟁’에 나서 고립될 경우 퇴로가 없고, 이 경우 그동안 쌓아올린 촛불의 성과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고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장기적으로 촛불의 성과를 한 단계 정리한 뒤, 쇠고기 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 들어 추진되는 민영화·교육자율화 등 다른 문제들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구 개편을 준비하자는 목소리와 7월 실시되는 교육감 선거에 맞춰 ‘국민투표’를 제안해 보자는 주장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결국 남은 것은 민심의 추이”라고 말했다. 1차적으로는 정부가 고시를 강행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주의 여론 추이가 50일 넘게 끌어온 ‘쇠고기 정국’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대책회의는 25일 오후 10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네티즌 즉석 토론회’를 열고, 24일과 27일 이틀 동안 2·3차 국민대토론회를 열어 앞으로의 대응 수위를 고민하기로 했다.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촛불 집회장에서는 분노한 시민 반응이 느껴지지만, 예측은 극히 어렵다”며 “누가 주도하고 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촛불이 아닌 만큼 이번주까지는 사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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