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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출렁이는 촛불이여, 우리를 씻어다오

등록 2008-06-12 20:53

소설가 김영현
소설가 김영현
촛불집회 현장에서 소설가 김영현
보라, 야만·탐욕 맞선 인간다움의 몸부림을
가라, 반생명·반문명의 벽을 넘어 도도하게

지금 대한민국은 촛불이 강을 이루어 출렁이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을 넘어 바다 저편 낯선 대륙에까지 번지고 있다. 도대체 이 거대한 출렁거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출렁이며 흘러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흐르는 강물에 몸을 담그듯 오랜만에 거리에 선다. 이십여년 전, 짱돌을 들고 섰던 그자리에 이제 머리 희끗한 오십대가 되어 촛불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길놀이가 벌어지고, 시를 읽고, 연설을 하고 …. 이윽고 이한열 열사의 초상을 앞세운 패가 들어온다. 갑자기 눈시울이 나도 모르게 슴벅하게 젖는다. ‘동지는 간 곳 없고, 깃발만 나부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김병곤, 이범영, 김귀정 …. 유월의 거리에서 죽어간 그들의 모습에 목이 멘다. 수차례 정권이 바뀌는 동안 그들의 꿈은 낡은 것으로 변해 버렸고, 고귀한 희생조차 조롱거리로 치부되고 말았다.

그들의 죽음 이후 무엇이 변했는가? 잠시 동안 반쪽짜리 불완전한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그나마 참을 만했다. 아니, 참아 주었다. 그래도 이 정도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위안을 했다. 하지만 권력이 수차례 바뀌어도 가진 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고, 없는 자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그런데다 부자들은 반쪽짜리 민주정권마저 좌파로 몰아붙였다. 5%도 안 되는 종부세 대상자들이 세금폭탄을 맞았다고 난리를 쳐댔고, 남북 민족간 상호 교류도 친북좌경이라며 아우성을 쳐댔으며, 미국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심기를 보이면 반미라고 떠들어댔다. 그리하여 마침내 돈으로 모든 가치가 재단되고, 돈이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세상을 업고 반민주 세력이 다시 득세까지 하였다. 돈 앞에서, 경제라는 단 한마디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더없이 초라해지고 피폐해졌다. 무한경쟁의 시장 논리 앞에 인간성마저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서로를 돌아보고 존중의 마음을 갖는 대신 막연한 미움, 정처없는 분노가 우리를 멍들게 하였다.

그리고 촛불이 시작되었다. 촛불의 강에 몸을 담그는 순간, 나는 무언의 감동에 몸을 떨었다. 누군가가 김밥을 나누어 주었고, 낯선 사람과 생수를 나누어 마셨다. 얼굴이 더없이 편하고 아름답다. 서로의 가슴속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미소처럼 흐른다. 그렇다. 이것은 거대한 정화의 강이다. 힌두교도들이 갠지스강에 몸을 담가 세속의 탐욕을 씻어내듯 촛불의 강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아 있던 경계를 허물고, 찌꺼기를 걷어내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하는 거대한 정화의례다.

이 출렁이며 흘러가는 촛불의 강은 과연 어디에 이를 것인가? 지금은 아무도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미 이런 출렁거림 자체가 21세기 야만적인 인간의 탐욕 앞에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속죄이며,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란 것을 …. 그리고 그 꿈은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거리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

그리하여 생각건대 촛불은 더욱 도도하게 흐를 것이다. 욕망의 극대적 상징인 이명박 정권을 넘어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 뒤에 숨어 있는 세계화라는 괴물과 싸울 것이다. 흰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나아가 세계무역기구(WTO)라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힘겹게 대결할 것이다. 그리하여 반생명적이고, 반문명적이고, 반인간적인 모든 장애를 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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