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정 전 의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 국회 떠난 임채정 전 의장
‘고수’는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67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면이 있다. 생각이 젊어서 그럴 것이다. 그는 4·19가 있던 1960년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따라서 그가 살아온 나날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국회의장직을 마지막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오랫동안 재야와 야당의 ‘이론가’였다. 그의 이론은 현실을 굳게 딛고 있는 것이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터뷰를 한 날은 17대 국회의원 임기 마지막 날인 5월29일 오후였다.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무척 편안해 보였다. 다음날 의장 공관을 비우기 위해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위한 권력인 줄 알았던 국민
신뢰 잃고 배신감·분노 휩싸여
국회, 행정부 견제기능 되찾고
국민·언론의 의식변화 뒤따라야 -기자, 재야 운동가,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현역에서 물러나는 소회는? =물러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 많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좀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등의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았다. 과분하다. 은퇴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더라. 무기력하게 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남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조로하지 말라는 뜻으로 준 것으로 알겠다”고 인사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다시 영역을 찾아가려고 한다. -평생 공적인 삶을 산 이유는?
=사실 나는 자유분방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젊었을 때는 공적인 부분이 사적인 부분을 지배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할 말을 하고 자유를 누리고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가 어려웠다. 사회적 변화와 변혁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의 물결에 뛰어들도록 하는 그런 시대였다.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정치가 뭐라고 생각하나? =정치는 통합이다. 우리 시대의 당면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재야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하게 된 이유는? =나는 권력을 원해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정치를 한 것이 아니다. 욕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했다. 처음 감옥에 갔을 때 5·18 광주를 맞았고 감옥에서 나와서 계속 싸웠다. 그런데 많은 고민 끝에 언제부턴가 민주화 운동만으로 반독재 투쟁에서 승리하고 민주화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무 희생이 크고 투쟁이 길어진다고 봤다. 민주화 운동의 순수성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치권과 힘을 합쳐서 독재권력과 싸우는 것이 민주화로 가는 전략적 길이라고 봤다. 정치권과 손을 잡고 민주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80년대 중반부터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87년 개헌 현판식을 하면서 참여하기 시작했다. -실제 정치에 뛰어든 것은 언제인가? =87년 12월 대통령 선거다. 비판적 지지로 직접 정치권에 들어갔다. -정치를 한 보람이 있다면? =정권교체다. 두 번의 대선 승리에 내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규정을 한다. 평화적 방법으로 민주화 운동의 기초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1960년 이후 우리나라 역사를 평가한다면? =처음엔 혼란기의 연속이었다. 60년대부터 국가가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우리 국민들의 발흥기였다. 전쟁과 극빈과 독재에 맞서서 민족의 저력을 발휘했다. 절망적 상황을 뚫고 성취를 한 시대였다.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농업사회에서 경공업, 중화학공업 사회, 정보화 사회를 거쳐서 2만달러 시대를 이뤄냈다. 두 번의 군사쿠데타로 암울한 시대를 뚫고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그 뒤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이른바 평화민주개혁세력이 정권을 왜 빼앗겼나? =복잡한 문제지만 간단히 얘기하겠다. 평화민주개혁세력이 준비를 덜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몰두하다 보니 반독재 투쟁에 성공한 이후의 사회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다. 일부는 민주화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판단했다. 민주화 이후 전면적인 사회변화 요구,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요구에 대해 과학적 대안을 만들고 비전을 제시하고 좌표를 설정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권위주의 정권 밑에서 커 온 기득권 세력과 겨루느라 여유가 없었다. 알게 모르게 서민들의 삶과 멀어지고 게을러진 면도 있다. 변화와 발전을 요구하고 우리에게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 사이 경제는 어려워졌다. 국민들이 지난날의 향수에 젖었고, 발전주의, 개발성장론으로 마음이 돌아가게 됐다. 그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제를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회와 국민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현안 해결책이 없다.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시이오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인사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실효성도 가망도 없다. 매우 편파적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능력이 있긴 있나? 안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먼저 안다. -쇠고기 파동의 원인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지 않고 자기들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국민들의 건강을 담보로 내줬다고 국민들이 생각한다. 가치가 전도됐다고 느끼는 것이다. 경제 때문에 압도적 지지를 해 줬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 있었다. 그 불안을 확인했다. ‘우리’를 위한 권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대단히 분노하고 서운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대를 접고 있는 것이다. -인사의 문제점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능력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라는 뜻도 있고, 올곧은 사람을 써야 한다는 기대도 있다. 또 자기 사람만 쓰지 말고 사회를 균형있게 끌고 가기 위해 공정하게 사람을 쓰라는 의지의 표현도 있다. 이런 함축된 가치는 모두 깨 버리고 아는 사람만 쓰는 것은 국민들에게 패거리 정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10여년 동안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공적 부분에 대한 국민들의 기준이 높아졌다. 국민들 눈높이에 못미치는데 억지로 자꾸 밀어붙인다. 그래서 국민들이 불만이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심각하다. 북한을 압박하거나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화하는 것 이외에 어떤 방법이 있나? 평화를 유지하고 언젠가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 햇볕정책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나?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상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데, 무엇을 교환하자는 것인가? 북한을 길들이겠다는 것인데 그런 수준에서 남북관계를 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경험했다. 미국이 그 정책을 포기했다. 길들이기 말고도 북한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부의 개성공단, 동부의 금강산이 있다. 느리고 불충분하지만 변화가 있었다. 인내를 갖고 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 것이다. 전세계가 지지했던 대북정책을 바꾸면서 지금은 우리 정부가 고립되고 있다. 그런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라도 지난 정부의 성과를 계승해서 화해 협력에 나서야 한다. 이 상태로 긴장이 계속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느냐. 손해보는 것은 우리뿐이다.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다. 미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멀고 힘들어도 평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잘 할 수 있다고 보나? =가장 큰 문제가 이 심각성을 깨닫고 있느냐다. 정치세력이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를 따르라’식의 정치,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효율성만 강조하는 태도로는 어렵다. -비관적으로 본다는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서울시장, 시이오를 지냈다. 문제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경력을 갖추고 있다. 기대를 가지고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영호남 현지 유권자들과 영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심이 달랐다. 지역주의는 퇴조하고 있다고 보나? =어려운 문제다. 지역정서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단선적이고 정서적이었다. 요즘은 지역감정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어디 사느냐에 따라서 조금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이해관계에 시선을 많이 보내게 되었다. 지역감정의 내용과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절대적이었지만 지금은 상대적이다. 그렇다고 지역 갈등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앙금으로 남아 있다. -보수 전성시대가 왔다는 진단이 있다. =예단할 수 없다. 두 번 선거 결과로 보면 우울한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간단하지가 않다. 역동적이고 매우 예민하다. 보수 장기집권은 쉽지 않다. 요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를 보라. 매우 분노하고 있고 빠르게 태도를 바꾸고 있다. 일본과는 다르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민주개혁 세력이 재집권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막연한 진보, 막연한 개혁은 안된다. 논리적으로 옳아도 성공할 수 있는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관념적 진보, 슬로건 개혁으로는 안된다. 가치를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이 반응을 보일 것이다. 보수 편향은 국민들이 보수의 가치를 원해서가 아니라 진보 개혁에 대한 반발, 실망에 따른 반사적 행위일 수 있다. 보수가 부족하지만 기대를 걸어보는 보상심리의 측면도 있다. 일부 보수는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꿈꾸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인물난을 어떻게 생각하나? =심각한 문제다. 해결할 수 있는 왕도는 없다. 꾸준히 국민들 속에서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민들과 가까워지면서 자기를 부각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도 인물을 구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재집권을 위해 임채정 의장께서 할 역할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의회 일선에서 물러났다.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장은 무슨 일을 할 생각인가? =안사람과 성묘를 갈 생각이다. 부모님께 신고를 해야겠지. 우선은 놀면서 좀 추스릴 생각이다. -후배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할 말씀은? =입법부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독립적, 자율적 헌법기관으로서, 정치 중심체로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국회가 활성화되고 성숙하는 만큼 한국 정치는 발전한다. 한국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국회의원도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국회는 입법 기능, 행정부 견제 기능이 본연의 임무지만 요즘 너무 정치 투쟁에 몰두해 있다. 고유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대의성을 확대하도록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정치질서와 문화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해지고 국회의원도 대접받는다. 국회도 크게 자기를 되돌아 볼 때가 왔다. 우리 국회는 유럽과도 다르고 미국과도 다르다. 앞으로 헌법 문제가 나오면 그런 부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치가 어떻게 해야 발전한다고 보나? =의원들도 노력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발전해야 한다. 언론도 반성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정치 낙후의 가장 근본적 이유는 남북분단과 지역감정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이 정치적 다양성을 막았다. 이런 비합리적 가치로 투표를 했다.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해 치열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하다. =인터뷰는 ‘인터뷰이’도 중요하지만 ‘인터뷰어’가 더 중요하다.(웃음)
글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신뢰 잃고 배신감·분노 휩싸여
국회, 행정부 견제기능 되찾고
국민·언론의 의식변화 뒤따라야 -기자, 재야 운동가,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현역에서 물러나는 소회는? =물러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 많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좀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등의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았다. 과분하다. 은퇴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더라. 무기력하게 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남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조로하지 말라는 뜻으로 준 것으로 알겠다”고 인사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다시 영역을 찾아가려고 한다. -평생 공적인 삶을 산 이유는?
=사실 나는 자유분방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젊었을 때는 공적인 부분이 사적인 부분을 지배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할 말을 하고 자유를 누리고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가 어려웠다. 사회적 변화와 변혁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의 물결에 뛰어들도록 하는 그런 시대였다.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정치가 뭐라고 생각하나? =정치는 통합이다. 우리 시대의 당면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재야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하게 된 이유는? =나는 권력을 원해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정치를 한 것이 아니다. 욕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했다. 처음 감옥에 갔을 때 5·18 광주를 맞았고 감옥에서 나와서 계속 싸웠다. 그런데 많은 고민 끝에 언제부턴가 민주화 운동만으로 반독재 투쟁에서 승리하고 민주화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무 희생이 크고 투쟁이 길어진다고 봤다. 민주화 운동의 순수성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치권과 힘을 합쳐서 독재권력과 싸우는 것이 민주화로 가는 전략적 길이라고 봤다. 정치권과 손을 잡고 민주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80년대 중반부터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87년 개헌 현판식을 하면서 참여하기 시작했다. -실제 정치에 뛰어든 것은 언제인가? =87년 12월 대통령 선거다. 비판적 지지로 직접 정치권에 들어갔다. -정치를 한 보람이 있다면? =정권교체다. 두 번의 대선 승리에 내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규정을 한다. 평화적 방법으로 민주화 운동의 기초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1960년 이후 우리나라 역사를 평가한다면? =처음엔 혼란기의 연속이었다. 60년대부터 국가가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우리 국민들의 발흥기였다. 전쟁과 극빈과 독재에 맞서서 민족의 저력을 발휘했다. 절망적 상황을 뚫고 성취를 한 시대였다.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농업사회에서 경공업, 중화학공업 사회, 정보화 사회를 거쳐서 2만달러 시대를 이뤄냈다. 두 번의 군사쿠데타로 암울한 시대를 뚫고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그 뒤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이른바 평화민주개혁세력이 정권을 왜 빼앗겼나? =복잡한 문제지만 간단히 얘기하겠다. 평화민주개혁세력이 준비를 덜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몰두하다 보니 반독재 투쟁에 성공한 이후의 사회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다. 일부는 민주화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판단했다. 민주화 이후 전면적인 사회변화 요구,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요구에 대해 과학적 대안을 만들고 비전을 제시하고 좌표를 설정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권위주의 정권 밑에서 커 온 기득권 세력과 겨루느라 여유가 없었다. 알게 모르게 서민들의 삶과 멀어지고 게을러진 면도 있다. 변화와 발전을 요구하고 우리에게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 사이 경제는 어려워졌다. 국민들이 지난날의 향수에 젖었고, 발전주의, 개발성장론으로 마음이 돌아가게 됐다. 그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제를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회와 국민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현안 해결책이 없다.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시이오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인사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실효성도 가망도 없다. 매우 편파적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능력이 있긴 있나? 안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먼저 안다. -쇠고기 파동의 원인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지 않고 자기들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국민들의 건강을 담보로 내줬다고 국민들이 생각한다. 가치가 전도됐다고 느끼는 것이다. 경제 때문에 압도적 지지를 해 줬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 있었다. 그 불안을 확인했다. ‘우리’를 위한 권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대단히 분노하고 서운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대를 접고 있는 것이다. -인사의 문제점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능력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라는 뜻도 있고, 올곧은 사람을 써야 한다는 기대도 있다. 또 자기 사람만 쓰지 말고 사회를 균형있게 끌고 가기 위해 공정하게 사람을 쓰라는 의지의 표현도 있다. 이런 함축된 가치는 모두 깨 버리고 아는 사람만 쓰는 것은 국민들에게 패거리 정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10여년 동안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공적 부분에 대한 국민들의 기준이 높아졌다. 국민들 눈높이에 못미치는데 억지로 자꾸 밀어붙인다. 그래서 국민들이 불만이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심각하다. 북한을 압박하거나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화하는 것 이외에 어떤 방법이 있나? 평화를 유지하고 언젠가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 햇볕정책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나?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상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데, 무엇을 교환하자는 것인가? 북한을 길들이겠다는 것인데 그런 수준에서 남북관계를 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경험했다. 미국이 그 정책을 포기했다. 길들이기 말고도 북한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부의 개성공단, 동부의 금강산이 있다. 느리고 불충분하지만 변화가 있었다. 인내를 갖고 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 것이다. 전세계가 지지했던 대북정책을 바꾸면서 지금은 우리 정부가 고립되고 있다. 그런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라도 지난 정부의 성과를 계승해서 화해 협력에 나서야 한다. 이 상태로 긴장이 계속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느냐. 손해보는 것은 우리뿐이다.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다. 미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멀고 힘들어도 평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잘 할 수 있다고 보나? =가장 큰 문제가 이 심각성을 깨닫고 있느냐다. 정치세력이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를 따르라’식의 정치,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효율성만 강조하는 태도로는 어렵다. -비관적으로 본다는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서울시장, 시이오를 지냈다. 문제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경력을 갖추고 있다. 기대를 가지고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영호남 현지 유권자들과 영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심이 달랐다. 지역주의는 퇴조하고 있다고 보나? =어려운 문제다. 지역정서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단선적이고 정서적이었다. 요즘은 지역감정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어디 사느냐에 따라서 조금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이해관계에 시선을 많이 보내게 되었다. 지역감정의 내용과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절대적이었지만 지금은 상대적이다. 그렇다고 지역 갈등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앙금으로 남아 있다. -보수 전성시대가 왔다는 진단이 있다. =예단할 수 없다. 두 번 선거 결과로 보면 우울한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간단하지가 않다. 역동적이고 매우 예민하다. 보수 장기집권은 쉽지 않다. 요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를 보라. 매우 분노하고 있고 빠르게 태도를 바꾸고 있다. 일본과는 다르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민주개혁 세력이 재집권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막연한 진보, 막연한 개혁은 안된다. 논리적으로 옳아도 성공할 수 있는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관념적 진보, 슬로건 개혁으로는 안된다. 가치를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이 반응을 보일 것이다. 보수 편향은 국민들이 보수의 가치를 원해서가 아니라 진보 개혁에 대한 반발, 실망에 따른 반사적 행위일 수 있다. 보수가 부족하지만 기대를 걸어보는 보상심리의 측면도 있다. 일부 보수는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꿈꾸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인물난을 어떻게 생각하나? =심각한 문제다. 해결할 수 있는 왕도는 없다. 꾸준히 국민들 속에서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민들과 가까워지면서 자기를 부각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도 인물을 구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재집권을 위해 임채정 의장께서 할 역할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의회 일선에서 물러났다.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장은 무슨 일을 할 생각인가? =안사람과 성묘를 갈 생각이다. 부모님께 신고를 해야겠지. 우선은 놀면서 좀 추스릴 생각이다. -후배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할 말씀은? =입법부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독립적, 자율적 헌법기관으로서, 정치 중심체로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국회가 활성화되고 성숙하는 만큼 한국 정치는 발전한다. 한국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국회의원도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국회는 입법 기능, 행정부 견제 기능이 본연의 임무지만 요즘 너무 정치 투쟁에 몰두해 있다. 고유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대의성을 확대하도록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정치질서와 문화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해지고 국회의원도 대접받는다. 국회도 크게 자기를 되돌아 볼 때가 왔다. 우리 국회는 유럽과도 다르고 미국과도 다르다. 앞으로 헌법 문제가 나오면 그런 부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치가 어떻게 해야 발전한다고 보나? =의원들도 노력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발전해야 한다. 언론도 반성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정치 낙후의 가장 근본적 이유는 남북분단과 지역감정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이 정치적 다양성을 막았다. 이런 비합리적 가치로 투표를 했다.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해 치열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하다. =인터뷰는 ‘인터뷰이’도 중요하지만 ‘인터뷰어’가 더 중요하다.(웃음)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