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수입 ‘시점’만 실랑이
‘협상 대응 논리’ 자료에도 없어
농식품부 “미와 협의안해” 실토
‘협상 대응 논리’ 자료에도 없어
농식품부 “미와 협의안해” 실토
미국이 2005년의 입안예고안보다 후퇴한 수준의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공포했음에도, 정부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의 전제조건인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세부 내용을 협상 과정에서 아예 제기조차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어처구니없는 실책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총론 집착, 각론 놓쳐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와 관련해,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핵심 쟁점이 된 것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30개월 연령 제한을 강화된 사료 조처를 ‘공포’하는 시점에 풀어주느냐, ‘이행’할 경우에 풀어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론은 미국의 뜻대로 ‘공포’ 시점으로 매듭지어졌다.
정부는 ‘이행’ 시점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나름대로’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나머지 중요한 ‘각론’인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는 데 큰 신경을 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05년안대로 될거라 생각”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 직전인 지난달 10일 작성한 대외비 문서인 ‘미국산 쇠고기 관련 협상 추진계획’을 보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내용과 범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번 쇠고기 협상에 참가했던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협상 과정에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으로 할지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 ‘합의 요록’(4월18일 합의문의 부가 자료)에도 “미국은 상당 기간 동안 1997년 사료 금지 조처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으며, 현재는 미국 행정절차법에 따라 법규 제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설명하였다”고 적혀 있다. 즉, 법규 제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내용만 있지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상길 농식품부 축산정책단장은 “보통 입안예고를 하면 원안대로 공포하는 게 관례라고 생각해 2005년 안대로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 협상단이 당연히 2005년 입안예고안이 원안대로 공포될 줄 알고,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세부 내용은 협상 테이블에서 따져보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정부의 협상 태도가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협상 기준조차 없었을 개연성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세부내용에 대한 협상단의 명확한 기준 자체가 아예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지난달 25일 연방 관보에 공포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 내용이 2005년 입안예고안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2005년 안과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요구한 ‘교차감염’ 방지라는 목적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은 이럴 가능성을 보여준다. 교차감염 방지라는 모호한 기준만 세웠지, 세부 내용이 어떠해야 한다는 전술이 없었다는 얘기다.
미 대사관 자료도 흘려들어
우리 정부가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세부 내용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은, 지난달 30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농식품부에 연방 관보에 공포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내용을 통보한 이후 농식품부의 행태를 봐도 잘 드러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보내온 자료를 보면, 연방 관보에 게재한 전체 문안뿐 아니라 2005년 입안예고안과 달라진 내용에 대해 별도로 소개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당시에는 면밀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나타난 치명적 실수는 무지와 순진함, 협상 전술 부재가 만들어낸 ‘예고된 참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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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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