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촛불문화제가 열려, 참석한 시민과 학생, 누리꾼들이 촛불을 치켜들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아래는 경찰이 참석자의 차도 진출을 막기 위해 세워놓은 버스들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촛불시위 왜 계속 번지나
‘눈 가리고 아웅’ 신뢰 잃어
자성없이 끝없이 ‘네 탓’만
여론 잘못읽고 ‘괴담과 전쟁’
‘눈 가리고 아웅’ 신뢰 잃어
자성없이 끝없이 ‘네 탓’만
여론 잘못읽고 ‘괴담과 전쟁’
더 많은 촛불이 타올랐다.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등 전국 도심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3만여명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정부는 지난 7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촛불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는 빗나갔다. 청계광장을 환하게 밝힌 촛불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의 상징이다. 이 촛불은 왜 꺼지지 않고 갈수록 번지는걸까?
국민들은 이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를 설명하는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다. 처음엔 설명을 제대로 안 하다가, 나중엔 말을 바꾸고, 마지막에 내놓은 대책도 모호해 신뢰가 가질 않기 때문이다. 이날 청계광장 촛불 집회에 참석한 박민철(35)씨는 “처음에 협상 내용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정부가 이번엔 또 무슨 꼼수를 숨겼는지 몰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장호(23)씨도 “재협상 없이 수입 중단이 정말 가능한 건지, 그때 가서 또 말이 바뀌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애초 손해 보는 협상을 해놓고 어물쩍 넘기려던 정부였으니, 후속 조처도 ‘광우병에 걸리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은근슬쩍 피해 가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화장품은 안전하다’거나 ‘미국인도 수출되는 쇠고기와 똑같은 걸 먹는다’는 정부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정부의 신뢰도는 더 떨어졌다.
쇠고기 대책을 내놓은 뒤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은 대통령의 오만함도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지난 8일 발언은,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는 지난달 발언의 연장선에 있다. 대통령이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 ‘진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눈앞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전술’만 쓴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이들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하는 사람들”로 치부했다. 건강과 먹거리에 대한 불안도 ‘괴담’이나 ‘정치적 배후’ 탓으로 돌렸다. 조아무개(16)양은 “제발 제 배후를 좀 밝혀 주세요. 우리가 괴담이나 만들고 누구 따라 움직이는 간첩이 된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라고 비꼬았다. 통계치를 들어 광우병 걸릴 확률이 0에 가깝다는 정부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정부는 통계를 다루는 조사기관이 아니다. 존재하는 위험이 있으면 이를 어떻게 줄일지 생각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런 고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쇠고기 논란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미국 축산업계 대변자 노릇을 한다고 여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일본의 협상 내용과 비교되면서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인터넷에 ‘미국 대통령의 카트를 운전하는 한국 대통령’ 사진이 퍼지고, ‘일본에 독도를 양보했다’는 헛소문이 생긴 연유도 이런 자존심의 상처와 관련이 있다. 회사원 정진혁(33)씨는 “대통령이 쇠고기 협상을 하면서 자유무역협정을 의식해서인지, 임기가 끝나는 미국 대통령에게 간, 쓸개 다 떼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씁쓸해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 별장에 가서 대접 잘 받은 뒤 개방했다고 생각한다. 쇠고기 수입에 중립적인 이들도 이런 방식의 개방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여론이 어떻게 생겨나고 유통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른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힘을 과신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중·동이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여론의 흐름에서 오히려 철저히 소외됐다. 정부가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장한 새로운 10대들이 여론을 만들고, 이를 기성세대로 전파하는 새로운 경로도 파악하지 못했다. 회사원 김수형(42)씨는 “중학생 딸이 학교에서 듣고 온 수입 쇠고기 문제를 이야기했다. 내용이 논리적이진 않지만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 “이명박정부 오만·독선 멈출때까지” 다시 촛불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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