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시에서 발견된 조류 인플루엔자(AI)가 고병원성으로 판명되면서, 8일 오후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의 한 식당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썰렁한 모습이다. 춘천/연합뉴스
AI·광우병 불안감 확산…갈비탕등 안 먹어
식당 “파리만” 학교선 “학생들 그냥 버려”
식당 “파리만” 학교선 “학생들 그냥 버려”
“평소 이 시간이면 주차장 앞으로 차가 늘어서는데, 지금은 텅 비었잖아요.”
8일 낮 12시께 서울 종로구 효자동 삼계탕집 ‘토속촌’ 직원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던진 말이다. 이 식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과 점심을 먹을 만큼 유명세를 탔지만, 지난 6일 서울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평일 낮 가게 밖까지 늘어서던 손님들이 부쩍 줄어, 이날도 전체 400석 가운데 100석 가량만 찼다. 한 직원은 “조류 인플루엔자가 지방에서 발생했을 때는 손님이 절반 가량 줄었다가, 서울로 퍼지면서 손님이 평소의 3분의 1도 안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대전 ㄷ여중 교내 식당에선 이 학교 영양교사 김아무개씨가 쇠고깃국을 먹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학교에서는 한 달에 서너 차례 한우를 넣은 쇠고깃국을 차리는데, 이날은 전교생 580명 대부분이 쇠고깃국을 3분의 2 가량 남겼다. 김 교사는 “평소엔 국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오늘은 학생들이 쇠고깃국을 꺼린다”며 “교육을 해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아, 다음달 식단에 쇠고깃국을 넣어야 할지를 두고 학교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사 위아무개(27)씨도 “아이들이 집에서 교육을 받았는지, 닭강정을 내놓으면 먹지 않고 다 버린다”며 “일단 식단에서 닭요리는 다 뺐는데 반찬 계획 짜기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불거진 광우병 논란에다, 조류 인플루엔자(AI)까지 서울 도심으로 확산되면서 사람들의 ‘밥상’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아직 수입되지 않았고 닭고기도 잘 익혀 먹으면 문제가 없는데도, 문제는 ‘심리’다. 쇠고기는 논란이 워낙 거세다 보니 ‘불안’이 커졌고, 조류 인플루엔자도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는 모양새가 소비자들의 ‘불신’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날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박주희(35)씨는 한우 판매대와 닭고기 판매대를 한참 오가다, 결국 생선 파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박씨는 “가족이 고기를 좋아하지만, 쇠고기 논란에 조류 인플루엔자까지 겹쳐 고를 만한 반찬이 없다”며 난감해했다. 서울 동작구 한 마트에서는 특급 한우 불고깃감 100g을 3200원에 내놓았지만, 쉽사리 손님을 끌지 못했다.
한우 판매대 직원은 “손님들이 한우를 먹자니 비싸고, 수입산을 먹자니 불안해서 전반적으로 쇠고기를 잘 안 찾는 것 같다”고 속상해했다.
일반 식당에서도 갈비탕이나 소머리국밥은 기피 메뉴가 됐고, 오리고깃집은 발을 구르고 있다. 서울 종로구 당주동 ㅎ식당 김아무개(45)씨는 “예전엔 점심 때 나가는 게 대부분 갈비탕이었는데, 요즘엔 거의 안 나가고 주문 자체가 찌개 쪽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인근 식당 사장 박아무개씨도 “보통 점심시간에는 소머리곰탕이 잘나갔는데 이제는 찾는 사람도 없고, 매출도 50%쯤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일산의 오리고기 체인점에서 일하는 천양석(43) 대리는 “어버이날이면 예약이 줄을 잇는데 오늘은 손님이 거의 없다”며 “지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견됐을 때는 덜했는데 서울에서 터지니 사람들이 불안을 피부로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대전/손규성, 황춘화 송경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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