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대북협력사업 대표 유흥식 주교
한겨레가 만난 사람 - 교황청 대북협력사업 대표 유흥식 주교
“새 정부 들어 남북관계 경색
국제카리타스 13년 이어온
인도적 민간교류 창구 닫혀” “북 최악의 기근사태 예고 속
정부, 평년수준 지원 미적
더 늦기전 식량·비료 보내야” “속상합니다. 아니 속이 터집니다.” 4월의 끝자락 서울 명동성당 깊은 곳에 자리한 성바오로 수녀원, 새하얀 라일락꽃과 연분홍 철쭉꽃밭 사이로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는 정원은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했지만 그의 첫 마디는 절박했다. 온화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그의 어투는 단호했다.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으로, 국제 카리타스가 주도하는 전 세계 천주교의 대북협력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유흥식 라자로 주교, 대전교구장이기도 한 그가 빡빡한 서울 출장 일정을 쪼개어 <한겨레>와 첫 인터뷰를 자청한 ‘절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끼리도 그렇지만 국제관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할 말이 있을 때 직접 만나서 해야지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얘기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거든요. 하물며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을 향해 첫 인사도 나누기 전에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념이나 노선이 다르다해도 일단 대화는 해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 좋잖아요?” 후보 때부터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표방해온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인사차 방문한 미국에서 “과거처럼 위협적인 발언 때문에 북한을 도와주고, 협상하는 것은 앞으로 없다”는 식의 발언으로 가뜩이나 새 정부를 경계하고 있는 북한을 자극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새 정부가 이처럼 선핵 포기, 인권 개선, 분배 투명성 등을 대북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민간 차원의 인도적 교류 창구까지 꽉 막혀 있는 현실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국제카리타스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에 갔을 때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합의를 했었어요. 평양 제1인민병원의 의료장비 지원, 농업과학원 내 무균 씨감자 조직배양실 물품 공급, 제2 무균 씨감자 조직배양실 건설, 창광봉사관리국 식료품 가공공장 시설 협력 등 5가지 지원사업을 위해 올 3월말 다시 북한을 방문하기로요. 그런데 올들어 북쪽에서 우리와 접촉 창구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로 바꾸고는 지금껏 아무런 응답이 있어요.” 북쪽이 민화협으로 창구를 바꾼 표면적인 이유는, 국제카리타스의 대북협력사업을 한국 천주교가 주도하게 됐으니 외무성 산하의 민경련이 아니라 남북공동기구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화협에서는 한국 카리타스가 아닌 국제카리타스 대표단과는 상대할 수 없다며 외국인 실무자들의 방북을 거부하고 있다. 국제 카리타스는 교황청의 위임을 받아 1993년 베이징에서 국제원조기구로서는 가장 먼저 북한과 비공식 접촉을 한 이래로 지금껏 식량, 의약품 같은 긴급구호사업을 해왔다. 지난해까지 13년간 지원 규모만 모두 3400만 달러에 이르고 지원 사업장도 북한 전역에 걸쳐 2800곳이 넘는다. 전체 지원액 가운데 10~15%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천주교의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국제 카리타스는 3년 전 대북협력사업 대표실무기구를 홍콩에서 한국으로 2007년부터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으로서 대표가 된 유 주교가 3차례 북한을 다녀왔고 실무자들은 더 자주 만나왔다. “첫 방문 때 보니 북쪽 실무자들이 ‘수호천사’라 부를 정도로 카리타스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어요. 일회성 원조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관된 지원을 실천해왔으니까요. 그 신뢰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북한의 자립을 위한 개발과 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채비를 해두었어요. 그런데 새삼스럽게 형식논리를 들어 갑자기 이렇게 길이 막혀버렸으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그가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마냥 기다릴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인 식량 위기 속에 북한은 100만 명 이상이 아사한 1990년대초 이래 또다시 최악의 기근사태를 맞을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는 올 봄 북한이 식량난으로 대재앙을 맞을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당시 인터뷰를 통해 ‘서울-평향 상설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했던 신문인 <워싱턴포스트>는 최근호에서 ‘이명박 정부가 WFP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지난 10여년 동안 해마다 해온 식량 50만t과 비료 90만t의 북한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위정자와 백성은 구분을 해야 합니다. 우선 당장 북한 주민들이 굶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이 약속한 곡물과 남쪽이 늘 지원해온 비료 만이라도 보내야 합니다.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목소리에 점점 힘을 더하는 그는 “줄 수 있는 부자 형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며 남쪽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식량 사정이 나쁜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주민들의 허리띠 만 졸라매게 하고 있는 북한 당국도 야속하지만, 이대로 서로 버티기만 해서는 불쌍한 주민들만 희생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병을 앓고,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날 정도로 건강을 염려하는데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간다면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죄를 짓는 것 아닙니까?” 지난해 4월 인도, 베트남 주교와 함께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교황 베네딕트 16세로부터 5년 임기의 사회복지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연초 교황님을 알현한 자리에서도 ‘북한 주민들을 계속, 좀더 계획적으로 도와주라’는 당부와 함께 남북화해를 기도의 주제로 삼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남이냐 북이냐’는 질문을 받으며 분단국 주교로서 ‘1천만 이산가족 문제를 모른 채 하는 것은 역사 앞에 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첫 방북하기 전날 잠을 설치며 기도했습니다. 편견없이 그들의 눈으로 이해하게 해주시라고. 남북관계는 길게 보면 한 걸음 뒤로 갔다 두 걸음 전진해왔습니다. 지금 후퇴하는 듯도 하지만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민간교류 창구 만은 닫지 않아야 한다고 다시한번 남북 당국에 호소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ccandori@hani.co.kr
국제카리타스 13년 이어온
인도적 민간교류 창구 닫혀” “북 최악의 기근사태 예고 속
정부, 평년수준 지원 미적
더 늦기전 식량·비료 보내야” “속상합니다. 아니 속이 터집니다.” 4월의 끝자락 서울 명동성당 깊은 곳에 자리한 성바오로 수녀원, 새하얀 라일락꽃과 연분홍 철쭉꽃밭 사이로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는 정원은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했지만 그의 첫 마디는 절박했다. 온화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그의 어투는 단호했다.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으로, 국제 카리타스가 주도하는 전 세계 천주교의 대북협력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유흥식 라자로 주교, 대전교구장이기도 한 그가 빡빡한 서울 출장 일정을 쪼개어 <한겨레>와 첫 인터뷰를 자청한 ‘절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끼리도 그렇지만 국제관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할 말이 있을 때 직접 만나서 해야지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얘기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거든요. 하물며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을 향해 첫 인사도 나누기 전에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념이나 노선이 다르다해도 일단 대화는 해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 좋잖아요?” 후보 때부터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표방해온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인사차 방문한 미국에서 “과거처럼 위협적인 발언 때문에 북한을 도와주고, 협상하는 것은 앞으로 없다”는 식의 발언으로 가뜩이나 새 정부를 경계하고 있는 북한을 자극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새 정부가 이처럼 선핵 포기, 인권 개선, 분배 투명성 등을 대북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민간 차원의 인도적 교류 창구까지 꽉 막혀 있는 현실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국제카리타스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에 갔을 때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합의를 했었어요. 평양 제1인민병원의 의료장비 지원, 농업과학원 내 무균 씨감자 조직배양실 물품 공급, 제2 무균 씨감자 조직배양실 건설, 창광봉사관리국 식료품 가공공장 시설 협력 등 5가지 지원사업을 위해 올 3월말 다시 북한을 방문하기로요. 그런데 올들어 북쪽에서 우리와 접촉 창구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로 바꾸고는 지금껏 아무런 응답이 있어요.” 북쪽이 민화협으로 창구를 바꾼 표면적인 이유는, 국제카리타스의 대북협력사업을 한국 천주교가 주도하게 됐으니 외무성 산하의 민경련이 아니라 남북공동기구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화협에서는 한국 카리타스가 아닌 국제카리타스 대표단과는 상대할 수 없다며 외국인 실무자들의 방북을 거부하고 있다. 국제 카리타스는 교황청의 위임을 받아 1993년 베이징에서 국제원조기구로서는 가장 먼저 북한과 비공식 접촉을 한 이래로 지금껏 식량, 의약품 같은 긴급구호사업을 해왔다. 지난해까지 13년간 지원 규모만 모두 3400만 달러에 이르고 지원 사업장도 북한 전역에 걸쳐 2800곳이 넘는다. 전체 지원액 가운데 10~15%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천주교의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국제 카리타스는 3년 전 대북협력사업 대표실무기구를 홍콩에서 한국으로 2007년부터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으로서 대표가 된 유 주교가 3차례 북한을 다녀왔고 실무자들은 더 자주 만나왔다. “첫 방문 때 보니 북쪽 실무자들이 ‘수호천사’라 부를 정도로 카리타스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어요. 일회성 원조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관된 지원을 실천해왔으니까요. 그 신뢰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북한의 자립을 위한 개발과 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채비를 해두었어요. 그런데 새삼스럽게 형식논리를 들어 갑자기 이렇게 길이 막혀버렸으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그가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마냥 기다릴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인 식량 위기 속에 북한은 100만 명 이상이 아사한 1990년대초 이래 또다시 최악의 기근사태를 맞을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는 올 봄 북한이 식량난으로 대재앙을 맞을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당시 인터뷰를 통해 ‘서울-평향 상설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했던 신문인 <워싱턴포스트>는 최근호에서 ‘이명박 정부가 WFP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지난 10여년 동안 해마다 해온 식량 50만t과 비료 90만t의 북한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위정자와 백성은 구분을 해야 합니다. 우선 당장 북한 주민들이 굶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이 약속한 곡물과 남쪽이 늘 지원해온 비료 만이라도 보내야 합니다.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목소리에 점점 힘을 더하는 그는 “줄 수 있는 부자 형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며 남쪽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식량 사정이 나쁜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주민들의 허리띠 만 졸라매게 하고 있는 북한 당국도 야속하지만, 이대로 서로 버티기만 해서는 불쌍한 주민들만 희생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병을 앓고,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날 정도로 건강을 염려하는데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간다면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죄를 짓는 것 아닙니까?” 지난해 4월 인도, 베트남 주교와 함께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교황 베네딕트 16세로부터 5년 임기의 사회복지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연초 교황님을 알현한 자리에서도 ‘북한 주민들을 계속, 좀더 계획적으로 도와주라’는 당부와 함께 남북화해를 기도의 주제로 삼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남이냐 북이냐’는 질문을 받으며 분단국 주교로서 ‘1천만 이산가족 문제를 모른 채 하는 것은 역사 앞에 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첫 방북하기 전날 잠을 설치며 기도했습니다. 편견없이 그들의 눈으로 이해하게 해주시라고. 남북관계는 길게 보면 한 걸음 뒤로 갔다 두 걸음 전진해왔습니다. 지금 후퇴하는 듯도 하지만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민간교류 창구 만은 닫지 않아야 한다고 다시한번 남북 당국에 호소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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