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권·자녀문제 등 관심갖는 사람 거의 없어”
“투표권이 없는 우리가 직접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바뀌고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우리의 상황도 여러 가지로 바뀌는데, 이번 선거는 후보도 많고 싸움도 많고 복잡해서 어떤 후보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주노조 조합원 소부르(39·방글라데시)씨는 10년 전 한국에 들어와 두번째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달 단속된 이주노조 집행부 석방을 요구하며 서울 동대문구 한국기독교회관 7층에서 농성 중인 그는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가 ‘이주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더 늘었고 단속은 오히려 강화됐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산업연수생 제도에 따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모두 ‘고용허가제 실시’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나름대로 관심을 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대선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는 관심 밖이다. 이주노조는 각 후보에게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알려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레 집행부 세 명이 모두 연행되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21만여명에 이르는 미등록 외국인은 선거 과정에서 투표권은 물론이고 정책 차원에서도 철저히 배제된 ‘아웃사이더’들인 셈이다.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이주노동자 정책은 거의 없거나 선언적인 내용에 그치고 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20대 공약에는 이주민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으며,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는 ‘인권 보호’, ‘복지 지원’ 등 선언적인 내용을 짧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역시 복지 지원 차원에서만 ‘다문화 사회’를 다뤘다. 구체적인 정책을 공약에 반영한 후보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금민 한국사회당 후보 정도다. 권·금 두 후보는 고용허가제를 보완하는 ‘노동허가제’ 도입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내세웠고, 문 후보는 ‘이민·다문화청’을 만드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국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우삼렬 사무처장은 “이주민 문제는 이미 큰 사회문제이며, 앞으로는 이주민 자녀 문제도 크게 제기될 텐데 대선 국면에서 논의가 전혀 없다”고 아쉬워했다.
오는 18일은 유엔이 1990년 ‘이주민과 그 가족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을 채택한 것을 기념하는 ‘세계 이주민의 날’이지만, 대선 투표일 바로 전날이기도 하다. 한 해 한 차례 있는 ‘생일잔치’마저 대선에 묻힐 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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