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BBK해설판’ 등 대선관련 글·동영상 잇단 삭제
단순 유머·패러디까지…‘정치참여 위축’ 주장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뚜렷하지 않아 과도한 단속이 이뤄지는 등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에 위축과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블로그에 올라 인터넷에서 높은 관심을 끌고 있는 ‘비비케이(BBK) 사건 해설 동영상’은 지난 7일 처음 올랐는데 15일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 업체가 삭제했다. 실천연대의 윤철신 미디어국장은 “삭제된 뒤 포털 업체가 ‘중앙선관위로부터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통지와 삭제 요청이 있어 삭제했다’고 알려와, 어떤 부분이 선거법 위반인지 중앙선관위에 문의했지만 아직 공식적인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국장은 “이 동영상 말고도 삭제 당한 글이나 동영상이 많은데, 어떤 근거로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했는지도 모른 채 삭제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다음에 올라온 ‘이명박, BBK 사건의 진실’

지난 20일 ‘2007 대선시민연대’가 주최한 선거법 피해자 번개모임에서는 대선과 관련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손수제작물(유시시)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거나 선관위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은 이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62건의 동영상에 대해 삭제 요청을 받은 판도라티비 황승익 이사는 “선관위의 삭제 기준이 단순 유머, 패러디까지 넘나드니 그 기준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특정 후보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90여 차례 올려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은 소세영(40)씨는 “반복적으로 게시물을 올리면 선거운동 목적성이 있다고 본다는데, 그에 해당하는 반복 횟수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를 받고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는데도 별다른 조처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 지난 8월 종합생활정보지인 ㄱ지는 1면에 이인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사진과 함께 ‘이인제 대권 삼수 깃발 올리고 제2도약 시동 건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다음에는 당시 민주노동당 경선 후보였던 노회찬 의원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실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중앙선관위에 문의한 결과 “본래의 발행 목적 범위에서 벗어난 내용이므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받고 내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ㄱ지는 “ㅅ신문과 맺은 기사공급 계약에 따라 신문 기사를 그대로 가져와 실은 것”이라고 해명했고,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사 상태다. 사건을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이희동 검사는 “신문 기사를 그대로 가져왔고, 정치적인 목적이 있느냐는 부분에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기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선거법 자체가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 적용에 애매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중앙선관위 민병길 공보서기관은 “선거법 위반은 구체적인 경우를 다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세부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며 “선관위는 행정기관으로서 의견을 내놓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사법기관에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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