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경준쪽 “30쪽 이상…BBK 주인 가릴 내용”
이명박쪽 “18쪽 정식계약서 말곤 실체 없어”
이중 작성 가능성…문서감정 거쳐야 진위 가려질 듯

김경준씨가 지난 16일 국내 송환 길에 가져와 검찰에 제출한 이른바 ‘이면계약서’의 실체와 진위가 대선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특히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면계약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 실체 있나?=김경준씨가 이면계약서라고 주장하는 서류를 검찰에 제출한 사실은 검찰 조사를 받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측근 김백준씨의 언론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에리카 김도 <한겨레>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이면계약서에 대해 ‘30장이 넘는 분량’이라고 밝혔다.

김경준씨는 지난 8월 <한겨레 21>과 한 인터뷰에서 “이명박 후보가 엘케이이뱅크와 자회사인 비비케이 및 이뱅크증권중개의 지분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이면계약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면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고승덕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전략기획팀장은 20일 “이 사건에서 정상적인 계약서와 다른 별도의 이면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의문의 주식거래=이 후보 쪽이나 김경준씨 쪽 모두 엘케이이(LKe)뱅크와 에이엠(A.M.)파파스가 2001년 2월 맺은 주식구매 계약서(Stock Purchase Agreement)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엘케이이뱅크는 이 후보와 김경준씨가 공동대표였고, 에이엠파파스는 김경준씨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였다. 당시 이 후보와 김씨는 엘케이이뱅크의 지분 52%를 100억원에 에이엠파파스에 매각했다.

이 거래 자체에 수상쩍은 부분이 많다. 엘케이이뱅크는 당시 아무런 실적이 없었는데도 에이엠파파스는 액면가의 세 배 값에 주식을 산다. 계좌 흐름을 보면 이 100억원은 다스의 투자금에서 나온 정황이 역력해 돈세탁용 위장거래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 정식계약서냐, 이면계약서냐?=그런데 이 계약서의 분량을 놓고 양쪽의 설명이 다르다. 김씨 쪽은 영문으로 된 이 계약서의 분량이 30장 이상이며, 이 후보가 비비케이 등의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녹아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후보 쪽은 이 계약서는 18장 정도이고, 이 후보의 비비케이 소유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은 없다고 반박한다.

양쪽 주장을 짚어 보면 몇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먼저 18장의 정식계약서와 거기에 15장 정도(모두 합쳐 3건)가 추가된 이면계약서가 있는 경우다. 계약서가 이렇게 이중으로 작성됐다면, 정식계약서를 이야기하는 한나라당 쪽 주장과 이면계약서가 있다는 김경준씨 쪽 주장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김씨 쪽은 정식계약서와 이면계약서를 합쳐서 ‘30장 이상 분량의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이 후보 쪽은 이면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18장 분량의 정식계약서만을 인정하는 상황일 수 있다.

■ 위조됐을 가능성은?=한나라당 주장대로 이면계약서를 김경준씨 쪽에서 따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이면계약서의 진위는 문서감정 등 확인 절차를 거친 뒤에야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이면계약서의 실체가 없으며 있어도 위조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씨가 주장하는 이면계약서가 위조됐거나 실체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면 이 후보에게 쏠린 의혹을 한꺼번에 털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