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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내돈 내가면서 구속당하고 삽니까”

등록 2007-05-14 18:50수정 2007-05-15 08:39

채식주의자로 6년째 박하재홍씨
채식주의자로 6년째 박하재홍씨
[19돌 창간특집] 신 소수자 열전 - 휴대전화 버리고 삐삐쓰는 사람들
자발적 소수자들.두 단어의 조합은 낯설다. 전통적으로 소수자라는 말은 다분히 정치성을 내포한 표현이었다. 자신의 존재나 신념, 취향 때문에 다수의 편견과 횡포에 짓눌렸던 이들은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소수자라고 불렀다. 또는, 다수에 의해 소수자라고 낙인찍히기도 했다. 의도했든 안했든, 이들은 주류와의 긴장 속에서 우리 사회 다양성의 지평을 넓히고 인간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일깨웠다.

여기 소개하는 자발적 소수자는 전통적 소수자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들의 취향과 신념은 전통적인 소수자들보다 더 각론적이다. 그러니 전통적 소수자를 향했던 편견과 횡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수의 편에 섰을 때 얻는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고, 생활의 불편이나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 소수자다. 스스로 그 길을 택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일구는, 용기 있는 이단아들이다.

경남의 한 사립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이아무개(45) 교수는 지난 3월 휴대전화를 버렸다. “휴대전화에 구속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신 삐삐(무선호출기)를 구입했다.

삐삐만으로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았다. 학회나 친구한테서 온 연락을 놓치기라도 하면 “휴대전화도 없이 사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이 교수 스스로도 왠지 허전했다. 익숙한 휴대전화 벨소리가 더는 주머니에서 울리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자 이런 ‘금단현상’도 사라졌다. 논문을 쓸 때나 책을 볼 때 집중하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일주일에 술자리에 세 차례 이상 가지 않겠다는 결심도 한결 지키기 쉬워졌다. 한 달에 7만~8만원씩 나오던 휴대전화 요금도 안 내니 일석이조였다. 대신 삐삐 요금만 8500원 가량 나올 뿐이었다. 핀잔을 주던 친구들의 안부인사도 “요즘도 삐삐 잘 쓰고 있냐?”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자신의 삐삐를 만지작거리는 걸 볼 때면, 솔직히 약간 우쭐함도 생긴다. 이 교수는 “돈도 아끼고, 구속도 받지 않아서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처럼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별난 소수자’의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정보통신부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등록된 휴대전화 수는 4100만대를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4천만대를 넘어선 지 넉 달 만에 또 100만대의 휴대전화가 개통된 셈이다. 한국의 인구 4840여만명에서 9살 이하 인구 550여만명과 군인, 수감자 등을 빼면 실질적으로 1인당 1대씩 가진 셈이다.

휴대전화의 ‘애매한’ 대체재인 삐삐를 쓰는 이도 급감하고 있다. 삐삐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얼텔레콤 자료를 보면, 가입자 수는 지난해 5월 1만157명에서 이달 7287명으로 곤두박질쳤다. 리얼텔레콤의 한진식 이사는 “아직까지 삐삐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구속을 싫어하고 휴대전화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정말 구속을 싫어하긴 하는 모양이다. 휴대전화를 거부하는 이들은 인터넷에서 카페나 모임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나마 2004년 3월에 문을 연 삐삐 사용자 카페에는 3300여명의 회원이 있지만, 이곳도 사실은 시들하다. 지난 한 달 동안 단 한 건의 글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왜 채식이냐고요? 그냥 행복해지려고요”
[19돌 창간특집] 신 소수자 열전 - 채식주의자로 6년째 박하재홍씨

“아프다는 말을 잘 못해요. 감기에 걸려도 그냥 꾹 참죠. 하나같이 ‘채소만 먹어서 그래~’라고 하거든요.”

6년째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박하재홍(30)씨가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사람들 눈에는 그 다름이 도드라져 보이는 모양이다. “일부러 내세우지도 않지만 숨기지도 않아요.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불편해하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죠.”

그는 왜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24년 동안 즐겨 먹던 육류를 외면하고 있을까?

“초등학교 때 집에서 병아리를 키웠는데, 닭이 되니까 어머니가 잡아 삼계탕을 끓여줬어요. 키우던 닭을 잡아먹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슬펐죠.” 박씨는 ‘도살’이 끔찍했다. 그는 시사잡지 기사와 군대 시절 읽은 <간디 자서전>을 통해 ‘고기를 먹지 않고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4살에 채식주의자의 길로 들어섰다.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인데, 이들의 죽음은 끔찍하지 않나요?”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감정적으로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해요. 동물의 도살 장면은 보기가 너무 괴롭지만, 농부가 수확하는 장면은 아무렇지 않거든요.” 박씨는 “정치, 종교, 도살 등 각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행복하기 위해 채식을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채식이 대중화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1998년 피시통신에 채식동호회가 생겼고, ‘웰빙’ 바람을 타고 급속히 퍼졌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채식 카페가 100개 이상 있을 정도다. 공식 통계가 없어 정확한 채식주의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서울 신촌의 헌책방 ‘뿌리와 새싹’에서 1년6개월째 일하고 있는 박씨도 채식 관련 카페의 ‘방지기’다. “(채식주의자들이) 아직은 소수다 보니 불편한 게 많아서 정보가 중요해요. 생활에 불편이 없으려면 일반 식당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회원들이 올려주는 식당 정보는 정말 유용하죠.”

삶이 간소해지고 편식이 사라진데다 먹는 것이 새삼 기쁘게 느껴지는 건 채식이 준 뜻밖의 선물이라는 그에게 “그래도 가끔 고기가 먹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맛을 잊었다”며 웃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주민증 1년에 몇번이나 쓰세요?”
[19돌 창간특집] 신 소수자 열전 - 개인정보 수집 싫어 주민등록증 안만든 윤현식씨

연간 발급 330만건. 이 가운데 신규 발급은 ‘고작’ 60만건. 그러니 해마다 270만명 가량이 ‘이것 없이는 못 살겠다’는 듯 잃어버리거나 망가진 이것을 재발급 받는 셈이다. 만 17살 이상 국민이 가지고 있는 ‘3820만인의 카드’ 주민등록증 얘기다.

윤현식(39)씨는 ‘쯩’ 없이 7년 가까이 이 땅에서 살고 있다. 말랑말랑하던 옛 주민등록증은 2000년 6월1일로 효력을 잃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새 주민등록증으로 바꿔야 했지만, 신청할 때 열 손가락 지문을 뜨는 게 싫어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 싫었다. 그런 탓에 윤씨는 은행에서 그 흔한 대출 한 번 못 받았다. 금융권에서 주민등록증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주민증을 1년에 몇 번이나 사용할까요?”

윤씨가 보는 한국 사회는 ‘신분증 과신 사회’다. 이름, 지문, 주민번호, 사진, 발급일자, 주민등록기관장의 직인, 여기에 친절하게도 한자 이름까지. 명함 크기만한 플라스틱 조각이 ‘나’를 대신하는 사회. 웬만한 사람은 1년에 한 번 꺼낼까 말까 한 주민등록증이 지나치게 대접받고 있다는 말이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에 대한 공공기관의 ‘불신’도 이해하기 어렵다. “운전면허증 발급기관인 경찰이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하네요. 이상한 일이죠.” 민주노동당 법제실에 있는 윤씨는 일 때문에 2004년 여권을 발급받았다. “신분증이 없어 발급을 담당하는 분들이 욕을 많이 봤다”고 한다.

“주민등록증을 내보이며 자기를 소개하는 사람은 없죠. 명함에 주민등록번호 써달라는 사람도 없고요.”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자기 증명 방법은 ‘인우보증’이다.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은 누구다’라고 말해 주는 ‘인간적인’ 방식이다. “역사상 가장 먼저 발달한 신원보증 방법”이란다.

여권 만료일이 다가오면서 윤씨는 운전면허증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여권 재발급 때 신분 증명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운전면허증을 따려면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데 어쩌죠?”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 19돌 창간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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