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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제는 총 내려놓고 ‘희망의 자트로파’ 키웁니다

등록 2007-05-14 16:51수정 2007-05-15 11:20

민다나오 남부 코타바토주 술탄 구자라트지역에 사는 전직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지도자였던 다투 압둘라팁 디 파그랄라(오른쪽)와 친구인 호세 나르시소 발리야 그라시아가 자트로파 모종을 들어보이며 민다나오의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민다나오 남부 코타바토주 술탄 구자라트지역에 사는 전직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지도자였던 다투 압둘라팁 디 파그랄라(오른쪽)와 친구인 호세 나르시소 발리야 그라시아가 자트로파 모종을 들어보이며 민다나오의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19돌 창간특집] 필리핀 민다나오에 피는 평화
정부군과 30년전쟁으로 삶 피폐
밝은 미래를 일구고 싶습니다
마을사람들에 꿈 주는 자트로파
이걸 키워 잘살 수 있을까요?

민다나오, 필리핀에서 두번째로 큰 섬으로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약속의 땅’이라 불렸다. 그렇지만 오랜 내전은 이 곳을 ‘분쟁지역’으로 낙인찍었다. 모로(무슬림이 다수인 민다나오 주민)들이 가톨릭 정부의 무슬림 차별과 학대에 맞서 총을 들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30여년 가톨릭 정부군과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신인민군(NPA)의 무력충돌로 12만명이 희생됐다. 모로민족해방전선 쪽은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소탕’으로 고아만 5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정부군과 모로민족해방선선은 1996년 최종 평화조약을 맺었다. 민다나오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모로들이 여전히 무력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고 30여년을 싸웠지만 가족과 이웃을 잃었을 뿐 여전히 가난한 그들에게 정부가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민다나오 인구의 40%는 빈곤상태다. 총 없이도 살 수 있다면 모로는 총을 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 약속을 믿는 대신 모로는 스스로 ‘희망’을 찾아나섰다. 그들은 자트로파가 그 씨앗 속에 민다나오의 평화를 정착시킬 힘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필리핀 무슬림에게 자트로파 잎은 ‘부적’이었다. 몸에 지니고 다니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자트로파는 독성이 있어서 먹을거리가 못됐다. 대신 약으로 썼다.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통이 심할 때 자트로파 줄기를 불에 그을려 아픈 곳에 붙여두면 통증이 사그라들었다. 씨앗은 기름을 짜 불을 밝혔다. 하지만 자트로파는 이제껏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냥 마을 곳곳에서 무더기로 자라는 흔하디 흔한 식물이었다.

민다나오섬 술탄 구자라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투 압둘라팁 디 파그랄라(49)는 몇 해 전만 해도 남들처럼 자트로파를 농장 울타리로 삼았다. 독성이 있어 짐승들도 먹지 않기 때문에 작물을 보호하기에는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난 6일 찾은 다투네 마당 한쪽에는 자트로파 모종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다투는 “총을 내려놓고 마을로 내려온 뒤 처음으로 스스로 희망을 일구고 있다”며 웃었다. 이제 그에게 자트로파는 가족의 ‘미래’가 됐다.

다투는 1970~80년대 ‘압둘, 프레디, 롤덜, 허입스, 라탭’이라는 가명을 번갈아가며 쓰던 모로민족해방전선 지도자였다. 12살 때 산에 숨어들어 반군이 됐다. 글에 앞서 총 잡는 법을 배웠다. 다투는 “정부군의 모로 학살로부터 땅과 가족을 지키는 길은 정부군에 맞서 총을 드는 것뿐”이라고 배운 대로 믿었다. 89년 정부군에 체포되기 전까지 그는 민다나오 섬의 독립과 차별받는 모로의 땅을 지키려 정부군과 싸웠다. 총을 내려놓은 다투에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막막하기만 했다. 모로이슬람해방전선으로부터 받던 식량지원도 끊겼다. 필리핀에서 절대빈곤층이 가장 많은 땅, 민다나오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일은 비참했다.필리핀 정부는 민다나오에 평화조약의 대가로 산업화와 주택·도로항만 건설, 전력과 통신 설비 등을 약속했다. 모로들은 잠시 여기에 희망을 품었다. 더는 민다나오 생산물의 70% 이상을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에 뺏기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다투는 “정부가 개발을 약속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 세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웃들을 봐야 한다”고 실상을 전했다.

평화조약으로 겉으로는 평화를 되찾은 듯 보이지만, 남부 민다나오의 술루섬 등에서 무장한 모로들은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이따금 무력충돌도 빚어진다. 민다나오 지역을 관할하는 필리핀 육군 4사단의 호세 티 발비에토(54) 장군은 “민다나오의 분쟁은 모로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쟁지역’으로 낙인찍힌 민다나오는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은행은 모로들에게 농사를 짓거나 사업할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외부인에게 민나다오는 여전히 ‘여행 금지 지역’이다.


다투는 정부가 옥수수나 코코넛을 재배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 따라했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그러나 자트로파는 다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트로파는 심기만 하면 6개월 이후부터 50년 동안 정기적으로 수확을 할 수 있고, 자투리땅에서도 잘 자란다. 특별한 재배기술도 필요치 않다. 무엇보다 해마다 씨앗 살 돈을 꿀 필요가 없다. 가난한 농부들도 얼마든지 자트로파를 재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트로파는 옥수수나 코코넛처럼 당장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농부들에게 자트로파 씨앗을 대주고 안정적으로 수확한 씨앗을 사 줄 투자자들도 조심스레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다투는 자트로파가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민다나오의 평화를 유지해 줄 매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자트로파가 모로들에게 안정적 수입원이 돼 보통의 필리핀 사람들이 누리는 삶을 약속해준다면 모로들도 더는 총을 들지 않을 것이다. 술탄 구자라트 지역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호세 나르시소 발리아그라시아(56)는 “다투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에서만 50여명의 농부들이 자트로파 재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자트로파 재배조합을 꾸려 투자자와 계약을 맺어 대량 재배를 할 수 있다면 지역사회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투는 자트로파 씨앗을 통해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는 “이 지역에 학교와 병원을 짓겠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학교와 병원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는 학교에 가고 아픈 노인은 병원에 갈 수 있는 평범한 공동체가 그가 꿈꾸는 미래다. 다투는 무력저항을 계속하는 모로들을 마음으로 지지한다. 차별로 짓눌린 모로의 역사를 잊지 않고,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이제 산으로 가지 않는다. 다투는 “네 살 된 손녀가 보통사람들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나서서 자트로파 모종을 정성스레 가꾸는 이유다. 민다나오/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자트로파] 자트로파는 팜과 대두에 이어 바이오디젤 원료로 세계적 주목을 받는 식물이다. 자트로파 씨앗으로부터 생산된 기름이 경제성을 인정받고 있다. 재배를 시작하면 6개월 뒤부터 5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수확할 수 있다는 게 자트로파의 장점이다. 인도가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자트로파 재배를 권장하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도 일부 기업들이 바이오디젤용 자트로파 재배를 시작했다. 필리핀 정부도 시험재배를 하는 한편,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원이 될 수 있는 자트로파 재배를 권장하고 있다.

먹구름 걷히고 햇살이 드는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환경이 아름다운 민다나오에 황혼이 물들고 있다. 필리핀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는 풍부한 자원을 차지하려는 정부군과 반군이 30여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


현상수배범 그리고 한 가족
내전과 상관없이 민간범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들의 현상수배 공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는 민다나오 남부 코타바토주 헤네랄 산토스지역 거리에서 한 가족이 쉬고 있다. 민다나오는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평화 공존 상태다.

나란히 달린 두 깃발 ‘지금은 평화중’
이제는 정부군에 맞서 총을 드는 일이 없다는 민다나오섬 카가얀 데 오로에 있는 모로민족해방전선 캠프. 대부분의 모로민족해방전선 캠프는 평화조약 이후 정부군의 관리 아래 정기적으로 불법 무기 소지 검사까지 받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국기 대신 모로민족해방전선의 깃발을 게양한다. 정부군과의 대치가 시작되면 필리핀국기를 거꾸로 달아 적대감을 표시한다.

향토군 경계근무 “이상무”
모로이슬람해방전선과 대치 중인 민다나오 남부 코타바토주 바랑가이 지역의 한 야전캠프에서 정부군을 지원하는 향토군 병사가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자트로파에 물주는 정부군
민다나오를 관할하는 필리핀 육군 4사단 사령부 영내에서 정부군 병사들이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자트로파에 물을 주고 있다. 필리핀 육군은 지난해 1000헥타르의 농지에 자트로파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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