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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메일 보내면 바로 답장할게, 누나의 특별 서비스야!

등록 2007-05-14 13:56수정 2007-08-16 15:34

‘바람의 딸’ 한비야, 19살 청춘들을 만나다
사회운동 하고싶은데 주위에선 ‘공부해서 돈이나 벌어라’
제각각 버겁다고 생각하는 19살의 꿈과 두려움 앞에서 ‘바람의 딸’은 거침 없는 언니이자 누나였다. 19살짜리 젊은이들 넷은 “언니(누나)라면 어떡하겠어요?”라고 물었고, 한씨는 특유의 정확하고 속사포 같은 말투로 답변을 쏟아냈다. 세 시간에 걸친 만남은 금세 지나갔다. 한씨는 “난 매일 쏟아지는 이메일에 답변 안 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하지만 너희들은 예외야. 고민하는 것 있으면 연락해, 바로바로 답장할게. 누나의 특별 서비스야!”



여행으로 극단적 가난 체험…‘양극화 메우는 다리’ 놓아야

연세대 국제학부 1학년 박천영
연세대 국제학부 1학년 박천영
* 연세대 국제학부 1학년 박천영
누나, 제 꿈은 유엔에서 일하는 거예요. 유엔에서 일하자면 봉사활동도 해야 되고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처럼 빈민국가나 개발도상국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힘든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내 꿈을 위해서는 그런 봉사를 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정작 행동은 꺼려져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한비야 : 천영이는 왜 유엔으로 가고 싶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게 멋있게 보여서? 공공근로에 마음이 있어서? 유엔이 멋져보여서일 수도 있고, 이미지만일 수도 있고,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겠지. 유엔은 국제적 어젠다를 만들고 진행하는 유일한 단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행정적인 곳이야. 초식동물처럼 몸만 비대해진 곳이라고도 해. 그 꿈이 과연 진정 내 목표가 될지 알아야 해. 그보다 앞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지. 유엔에서 일하고픈 마음은 결국은 공공근로에 관한 것이야. 천영에게 공익적인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의 문제지.


그런데 그건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야. 그래서 학교에서 인턴십 같은 기회가 있거나 하면 무조건 해봐. 두 번째는 여행을 해. 여태껏 봤던 것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단적인 가난을 체험해 보는 거야.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하다는 거 알아? 왜냐하면 게으르면 굶어죽기 때문이야. 그런 걸 몸으로 체험해 보는 게 여행이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양극화된 세상에서 우린 다리를 놓아주어야 하는 사람이야. 열심히 찾아보면 해외·국제 봉사활동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먼저 내가 정말 그 일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해.

박천영 :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탁상공론 같아요. 모든 걸 숫자로 얘기해야 하고, 어느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식으로 배워요. 이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한비야 : 학교에서 배운 게 몽땅 필요없는 것은 아니야.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체계화하고 논리적으로 매뉴얼로 만드는 게 학교지. 학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과서를 공부해야 하지만, 진짜는 몸으로 배워야 해. 개인적으로 현장과 책상 사이에서 현장을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책으로 배우는 건 다 헛것이 돼. 몸으로 배우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어. 일단 자전거를 배우면 10년만에 다시 타더라도 1, 2분만 비틀거리면 바로 그 기억이 살아나는 것처럼 말이야. 꼭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어. 우리나라에서 도시락 나눠주기나 목욕 봉사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그 걸 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딴 걸 해도 돼. 돈을 벌어서 도움을 주는 것도 좋고, 어쨌든 일단 몸으로 체험해봐.

몸으로 배우는 건 절대 못잊어…목욕봉사든 뭐든 일단 시작해봐

산업디자이너 오현영
산업디자이너 오현영
* 산업디자이너 오현영
언니는 꿈을 이루러 가는 길의 중간에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어요? 혹시 늦지 않았는지, 지금 다시 공부를 시작해도 되는 건가. 지금 바로 세계여행을 떠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 없었어요?

한비야 : 나도 19살엔 분명히 조바심에 빠졌겠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재수하게 되면 더욱 그래. 하지만 그때 내게는 아무도 1, 2년 차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옆에 없었어. 너희는 이 언니가 이렇게 가르쳐주니 얼마나 좋니? 후후! 한두달 차이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너희들에게 말해도 잘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아. 그렇지만 인생 90년을 축구로 비유하면 너희는 지금 전반 19분을 뛰는 중이야. 19분에 한골 먹었다고 ‘아, 이제 끝이다!’ 하고 집에 가는 축구선수는 없어. 앞으로 후반전, 연장전 많이 있어. 난 스무살 넘어서까지 골 많이 먹은 사람이야. 내가 고졸 이후 6년 동안 보낸 시간은 나를 다지는 시간이 됐어. 내가 야무지게 살 수 있는 바탕이 됐지.

‘너무 늦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 전반 19분 골을 먹어도 만회할 시간은 충분히 있어. 대학 졸업보다 다양한 활동을 한 사람을 선호하는 시대가 올 거야. 월드비전은 사람뽑을 때 중학교 때부터 봉사활동을 뭘 했는지를 봐. 서류전형은 명문대학 출신인지를 보는 게 아니라 중학교 이후 어떤 인턴십이나 봉사활동을 했는지를 본다는 얘기야. 월드비전이 그렇다면 다른 데도 그럴 거야. 조바심이 들겠지만 거기 묻혀서 헤어나지 못하진 말아야지, 현영의 열아홉살 인생을 축복해.



너흰 전반 19분!…한두골 먹었다고 시합 포기해서야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1학년 권근영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1학년 권근영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1학년 권근영
언니,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인권, 여성인권에 관심 많았고, 엔지오에서 일하고 싶어서 성공회대를 지원했어요. 하지만 아르바이트 하면서 세상 사는 게 쉽지 않구나 하는 걸 알아가는 중이에요. 사회운동도 해보려 하는데 주위에선 ‘무슨 운동이냐, 공부해서 돈이나 벌어라’ 해요. 내가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닌데, 돈 없어도 다른 사람 도우며 살고 싶은데 ….

한비야 : 마음이 가는 일을 해.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여행기 쓰면서 먹고 살 수도 있지만 여행 다니고 글쓰는 것으로는 이제 내 마음이 뛰질 않아. 긴급구호 일을 할 때만 내 가슴이 뛰어. 내 마음이 몽땅 거기 가 있으면 그 일을 해. 가슴을 계속 뛰게 해. 살아 있으려면 돈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여럿 중 하나야. 마음에 없는 일을 하다가 자연사할 것인가, 아니면 뜨겁게 살다가 장렬히 전사할 것이냐의 선택이야. 어떤 삶이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지. 100°C로 끓으려면 정말 가슴 뛰는 일을 해. 어떤 일에 근영이 가슴이 뛰는데 그 일을 안 한다면 바보야.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말고, 할 수 있다면 맞서 싸워. 자기가 낙타라면 사막으로 가야지, 낙타가 숲에서 살 수 있나. 낙타는 사막에서는 유용한 동물이지만 숲에서는 잘 살 수 없는 동물이야. 자기가 어떤 동물인지 아는 것이 19살에 곰곰이 생각해 볼 과제야. 나는 낙타인가, 숲에 살아야 하는 호랑이인가. 나는 낙타인데 숲에 있지 않나. 그래서 힘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19살에 깨닫기는 어렵지만 노력하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권근영 : 전 그래서 1년짜리 국외봉사를 신청했지만, 공부와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부모님과도 떨어지게 돼 걱정이에요.

한비야 : 근영아, 일단 국외봉사 1년은 무조건 해. 봄 여름 가을 겨울, 금방 지나간다. 자리가 없어서 못 나가는 거지, 기회가 있는데 왜 안 나가니. 일단 자기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해봐야 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겉멋에 들어서 그런 건지 기쁨을 느끼는지 자기도 자신을 모른다. 2학년 3학년 되면 시간 있을까? 점점 시간 없어져. 지금 기회가 왔을 때가 항상 적기야. 절대 놓치지 마라. 근영아, 궁금한데 기회가 왔으니 어떻게 해야 돼?

권근영 : 달려가야죠.

한비야 : 그래,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가야 하는 거야. 그 경험과 고민을 다 기록해놔. 첫날 어리버리했던 자기와 떠날 때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1년 동안 얼마나 나아졌는지 확연히 느낄 거야. 1년간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듣고 싶으니 다녀와서 꼭 연락줘.



허황된 꿈이든 현실적 꿈이든 어쨌든 능력 닿는데까지 꿈을 꿔야

한양대 정보통신학과 1학년 정성헌
한양대 정보통신학과 1학년 정성헌
* 한양대 정보통신학과 1학년 정성헌
학생인권 관련 일을 해봤는데, 어른들은 “너희들은 어리고 학생이라 모른다”고 하세요. 누나는 만약 자녀들이 ‘학교 안가고 여행 가겠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한비야 : 알다시피 난 애가 없지, 그치. 하지만 나를 ‘꼬미’라고 부르는 사랑하는 조카들이 있어. ‘꼬마 이모’가 꼬미야. 중학생이면 몰라도 고등학생이라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싶어. 고등학생 정도면 생각이 있지 않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어리게 보는 것 같아.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아이들이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북돋아주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진짜 그 아이가 꽃을 피워내는 것을 많이 봤어. 내가 만약 선택할 위치에 있으면 나도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 내가 성헌이 엄만데, ‘고3 때 때려치고 여행을 간다’고 하면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네가 다 컸고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겠지’라는 판단을 할 것 같아.

정성헌 : 전 어릴 때 커서 고속버스 운전사를 하겠다고 했어요. 어른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택시 운전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기로 타협을 봤어요. 누나도 돈을 어느 정도 모아 여행을 떠났잖아요. 여행하려고 회사를 포기한 건데, 고민이나 두려움은 없었어요? 지금 전국의 누나들이나 아줌마들도 돌아다니고 싶지만 얽매여 있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아요?

한비야 : 난 회사 관둘 때 별로 걱정 안 했어. 처음부터 3년만 다니고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건 내 인생의 로망이었어.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내 인생의 진척이 안 되는 거지.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없던 이유는 승진할까 걱정돼서야. 승진하면 못 그만두니까, 그래서 승진을 한 달 앞두고 그만뒀어. 꼭 해야 한다면 두려움이 없어져. 좋은 걸 얻으려면 포기하는 게 있어야 해. 수업료를 내야지.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야.

한비야
한비야
내가 여행 갔다와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 꿈이 세계일주고 그것을 이룬 것일뿐이야. 여행을 가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나? 800원, 1000원에 아이들이 죽고 사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어? 긴급구호를 어떻게 알았겠어? 그때 여행이 지금 일을 하기 위한 수순이란 생각이 들어. 공포영화 볼 때 눈을 가리면서도 본다. 궁금하니까. 무슨 일을 포기할 때면 겁이 난다. 그런데 그 걸 넘어서는 무엇이 있어. 내 인생에 계산이란 처음부터 없었어. 난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 이렇게 인기있는 자린지 몰랐어. 온갖 신문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 몰려와. 그런 걸 염두에 두지 않았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모든 사람들이 여행갔다 와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 아니지, 난 시대와 궁합이 잘 맞은 거야. 해외 긴급구호 일도 10년 전에 했다면 어려웠을 거야. ‘한국에도 도울 사람 많은데 …’ 소릴 들었을 것이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정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계산 없이 했다는 거야. 내가 그것을 하면 어떻게 될까, 고민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했어.

물론 나도 가지 않은 길이 있어.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미고 사는 건데 그 여지는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그렇지만 긴급구호 한다고 결혼을 포기한 건 아니야. 지금도 찾는 중이야.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면 걱정하는 부모들이 있어. ‘헛바람만 들어서 오겠구나’ ‘쟤가 한동안 헛소리하겠구나’ 하는 걱정이지. 하지만 겨우 19살에, 90분 축구경기 중 지금 19분인데, 꿈까지 꾸지 않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야. ‘이 꿈을 꿔봤자 아무 소용없다’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워. 여러분의 하얀 도화지에 어떤 것도 그릴 수 있어. 어른들은 ‘밑그림 그려봐야 다 헛 거다. 직장 들어가면 똑같다’ 말할테지만, 똑같아도 좋아. 꿈을 꾸는 사람과 꿈도 없는 사람은 달라. 너희들, 남이 그러준 지도 안에서만 살고 싶어? 지도 밖이 궁금하지 않아?

‘난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해 보는 데까지가 너희들 능력이야. 실컷 꿈꿔. 내가 꿈꾸는 세상은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이야. 사람들은 ‘헛소리 한다’고 말하지만 난 그 꿈을 꾸고 있어. 그 꿈을 향해서 한발한발씩 가고 있어.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은 안 올지도 몰라. 너희도 허황된 꿈이든 현실적인 꿈이든 어쨌든 꿈을 꿔야 해.

‘바람의 딸’ 한비야, 19살 청춘들을 만나다
‘바람의 딸’ 한비야, 19살 청춘들을 만나다

정리 구본권 박상철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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