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서민의 삶을 보호하고 어루만져야 할 게 법과 제도라지만, 여기저기 뚫린 구멍은 여전히 크다. <한겨레>는 올해 정기국회를 맞아 민생 관련 입법운동에 나선 참여연대와 함께 돈없고 집없는 서민들의 삶을 괴롭히는 소비금융의 문제점과 각종 민생 관련 제도의 개선 방안을 몇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45살 김수미씨의 눈물
“시 등록업체라 대출…가게·집 보증금 날리고 남편 끝내 알코올중독” 서울 월곡동에 사는 김수미(45·가명)씨는 통장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채업소 20여곳에 입금해야 할 돈이 원금·이자를 합쳐 매일 90여만원이다. 3년 전 선이자 50만원을 떼고 빌린 500만원은 이자와 연체 수수료가 붙으며 눈덩이처럼 불어갔고, 이를 막고자 다시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다 보니 이젠 원금과 이자가 각각 얼마씩인지도 모를 지경이 됐다. 가게와 집 보증금은 사채업자에게 넘어간 지 오래다. 재래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할 때만 해도 남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았다. 시장 옆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지만 않아도, 남편이 교통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사채는 엄두도 내지 않았을 일이다. “서울시 등록업체라고 하길래, 신문에 나오는 ‘무서운 아저씨’들과는 다를 줄 알았죠.” 순진하게 사채 유혹에 넘어간 김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빚의 늪에 빠져들었고, 추심 독촉이 심해지면서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댄 남편은 결국 병원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사치한 것도 아니고 사정이 너무 어려워 그런 건데 ….” 김씨는 “파출부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갚으려 하지만, 워낙 금방 (빚이) 불어나 감당이 안 된다”며 울먹였다. 서민들이 고리사채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정부는 2002년 서민들을 과도한 사채금리로부터 보호하고 저신용 금융 수요자도 제도권 안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한다며 대부업 양성화에 나섰다. 그 결과 연 66%의 고금리를 보장한 ‘대부업법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자들과 서민들은 오히려 시중금리보다 열곱절이 넘는 고금리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대부업 양성화를 위한 ‘당근’으로 대부업자에게 66%의 고이자를 허용했지만, 일부 대형업체를 빼고 법정 이자율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사채 형태는 대부분 60일, 90일, 100일 단위의 ‘일수’다. 며칠이라도 일수 이자를 갚지 못하면, 수수료와 연체이자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58살 박순옥씨의 하소연
“애초 100만원 빌렸는데 재대출·돌려막기에 2년만에 700만원 눈덩이”
서울 화곡동의 박순옥(59·가명)씨는 2년 전 아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기 위해 처음으로 대부업 사무실을 찾았다. 빌린 돈 100만원과 이자 30만원을 100일 동안 매일 1만3천원식 갚는 조건이었다. “제때 갚으려고 했는데 도배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어서 일수를 10번 정도 못 찍었어요. 만기일이 돼서 사무실로 찾아가니 사채업자가 100만원을 재대출하라고 하더군요.” 명목은 100만원 재대출이었지만, 갚지 못한 13만원을 뺀 87만원만 받고 다시 100일 동안 1만3000원씩, 모두 130만원을 갚도록 했다. 1년 동안 이런 식의 사채를 쓰면 이자가 원금을 훌쩍 넘어선다.(연이율 109.5%) 박씨는 “이자가 늘어나 다른 사채를 다시 쓰게 된다”며 “2년 만에 벌써 사채업자 네 군데에 갚아야 할 돈이 700만원을 넘는다”고 하소연했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추정한 사금융 평균 금리는 연 204%였다. 등록 대부업체는 연 167%, 무등록 업체의 금리는 연 230%로 모두 법정 이자율을 크게 벗어났다. 한 등록 사채업자는 “100만원씩 열 집에 일수를 주면 하루에 적어도 15만원이 들어오는데, 며칠 모으면 또 한 집에 (사채를) 줄 수 있으니 떼여도 남는 장사”라고 털어놨다.
‘급전’이라는 이름의 수탈도 성행한다. 대부업체에 보통 주민등록등본과 인감도장을 넘긴 뒤 하루 뒤 대출이 이뤄지는 ‘급전’은, 신용도가 낮지만 돈이 당장 필요한 이들이 주로 찾는다. 신용상태 확인 없이 바로 빌려주는 급전은 떼일 위험도 높다. 대신에 이자율은 살인적이다. 한 사채업자는 “보통 하루 1%의 이자를 받지만, 요즘엔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하루 2%를 받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정책 당국은 대부업 양성화가 자리잡으면, 업체들의 경쟁으로 전체적인 금리가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성목 금융감독원 서민금융팀장은 “외국계 대형업체들이 대부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65.7%를 받던 기존 업체들이 이제는 30~40%짜리 상품도 내놓는 등 금리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업 시장에서 채무자는 늘 절박한 처지이고 채권자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만큼 시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사채시장의 폭리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18일 국민 경제생활 안정과 경제정의를 위해 연이율을 40% 이내로 제한하는 이자제한법 제정을 청원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도 연이자율을 25%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이종걸 열린우리당 의원은 연이자율을 40% 이내로 하되 등록 대부업자는 적용을 제외하는 법안을 내놓은 상태다. 법무부 역시 지난 6월 정책보고 자료를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서민들의 사채이자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기본법 형태의 이자율 제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헌욱 변호사(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는 “정부 주장은 사채시장의 기득권자를 보호하는 논리에 불과하다”며 “고리의 음성적 사채시장은 정부의 관리·감독과 단속으로 축소해야 할 대상이지 음성화 우려가 이자제한법 부활의 반대 논거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시 등록업체라 대출…가게·집 보증금 날리고 남편 끝내 알코올중독” 서울 월곡동에 사는 김수미(45·가명)씨는 통장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채업소 20여곳에 입금해야 할 돈이 원금·이자를 합쳐 매일 90여만원이다. 3년 전 선이자 50만원을 떼고 빌린 500만원은 이자와 연체 수수료가 붙으며 눈덩이처럼 불어갔고, 이를 막고자 다시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다 보니 이젠 원금과 이자가 각각 얼마씩인지도 모를 지경이 됐다. 가게와 집 보증금은 사채업자에게 넘어간 지 오래다. 재래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할 때만 해도 남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았다. 시장 옆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지만 않아도, 남편이 교통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사채는 엄두도 내지 않았을 일이다. “서울시 등록업체라고 하길래, 신문에 나오는 ‘무서운 아저씨’들과는 다를 줄 알았죠.” 순진하게 사채 유혹에 넘어간 김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빚의 늪에 빠져들었고, 추심 독촉이 심해지면서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댄 남편은 결국 병원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사치한 것도 아니고 사정이 너무 어려워 그런 건데 ….” 김씨는 “파출부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갚으려 하지만, 워낙 금방 (빚이) 불어나 감당이 안 된다”며 울먹였다. 서민들이 고리사채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정부는 2002년 서민들을 과도한 사채금리로부터 보호하고 저신용 금융 수요자도 제도권 안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한다며 대부업 양성화에 나섰다. 그 결과 연 66%의 고금리를 보장한 ‘대부업법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자들과 서민들은 오히려 시중금리보다 열곱절이 넘는 고금리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대부업 양성화를 위한 ‘당근’으로 대부업자에게 66%의 고이자를 허용했지만, 일부 대형업체를 빼고 법정 이자율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사채 형태는 대부분 60일, 90일, 100일 단위의 ‘일수’다. 며칠이라도 일수 이자를 갚지 못하면, 수수료와 연체이자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58살 박순옥씨의 하소연
“애초 100만원 빌렸는데 재대출·돌려막기에 2년만에 700만원 눈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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