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서민 울리는 법 이대로 둘건가] ④-1. 피도 눈물도 없는 채권추심

등록 2006-10-23 20:07수정 2006-10-30 10:07

집·회사 찾아와 협박·폭행 당해도 속수무책
추심업체 금품 주고 정보 빼내는등 불법 일쑤


“장기라도 팔까” 3백만명 ‘마음 고문’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상인 안토니오에게 3000다카트를 빌려주면서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잡는다. 빌린 돈을 기일 안에 갚지 못하게 된 안토니오는 생명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빚을 이유로 처벌을 하는 행위는 금지됐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채무 불이행을 죄로 간주하는 ‘샤일록의 논리’가 배어 있다. “가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장기매매 스티커를 보고 있노라면 내 것도 한번 팔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라는 한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의 말에는 삶을 위협받는 절박함이 드러나 있다.

250만원의 신용카드 빚을 지고 있는 김아무개(35·여)씨는 채권추심업체인 ㅇ캐피탈로부터 매일같이 빚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를 받는다. 김씨는 두 달에 나눠 갚겠다고 했지만 추심업체 직원은 15일 안에 갚으라며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어머니 직장에까지 전화를 걸어 집과 월급을 압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올 6월 말 현재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297만여명이다. 일단 채무불이행자가 되면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는 채권추심이 따라다닌다. 빚 독촉에 시달려 본 사람들은 채권자에게는 전횡과 같은 권리만이, 채무자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의무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반말에 욕설은 기본이고 회사나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큰 소리로 문을 두드려 창피를 준다. 대표적인 불법추심 유형은 전화·방문 등을 통해 불안·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제3자에게 채무사실을 알리거나 협박·폭행을 가하는 것 등이다.(그림 참조)



금융감독원이 사금융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03년 46%, 2004년 71%, 2005년 39%가 불법 채권추심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정상 채무자에 비해 불법추심 피해가 2~3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 결과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금융채무 사회책임연대’가 대구와 부산지역의 금융채무 불이행자 2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6월 발표한 결과를 보면 불법추심을 한번 이상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80%가 넘었다.

추심 과정에서 채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신용정보회사가 공무원 등과 짜고 불법을 저지르는 사례도 드러났다. ㅎ신용정보회사 전 직원인 강진욱(가명)씨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채무자의 직장, 가족 등을 확인하기 위해 동사무소 공무원들에게 금품을 주고 직인도 찍지 않은 주민등록 초본을 한꺼번에 1000장까지 발급받거나, 심지어 의사나 약사에게 돈을 주고 채무자의 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조회해 채권추심에 이용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신용정보법과 대부업법에 형사처벌 규정이 있는데도 채권추심업자 등의 불법추심 행위가 실제 처벌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유사 금융기관의 불법추심 관련 상담 건수는 274건이지만, 수사기관에 통보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김활 금융감독원 검사역은 “법규정이 다소 모호해 처벌 대상이 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불법추심을 경험해 고발을 해도 법적·도덕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채무자로서는 채권자가 합의를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헌욱 변호사(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는 “불법 채권추심은 피해자인 채무자들이 직접 나서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민생침해 사범으로 보고 엄단하려는 사법 당국과 금융감독 당국의 의지 없이는 근절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내 사망보험금은 손주 학비로”…‘보험청구권 신탁’ 시장 열려 1.

“내 사망보험금은 손주 학비로”…‘보험청구권 신탁’ 시장 열려

챗GPT 4시간 ‘먹통’에…방통위 “다음주까지 오픈AI에 자료 요청” 2.

챗GPT 4시간 ‘먹통’에…방통위 “다음주까지 오픈AI에 자료 요청”

한은 “추경, 여야 합의 조속 추진을”…정부 경제팀 잇단 긴급회의 3.

한은 “추경, 여야 합의 조속 추진을”…정부 경제팀 잇단 긴급회의

매일유업 멸균 우유 회수 공지…“세척수 섞여 들어가” 4.

매일유업 멸균 우유 회수 공지…“세척수 섞여 들어가”

브로드컴, 시총 1조달러 ‘깜짝 돌파’…엔비디아 ‘AI 칩’ 아성 위협 5.

브로드컴, 시총 1조달러 ‘깜짝 돌파’…엔비디아 ‘AI 칩’ 아성 위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