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공자도 ‘천하의 백수’…부끄러울게 뭐가 있나”

등록 2006-09-05 11:50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대표. 김미영 기자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대표. 김미영 기자
[인터뷰] 대표백수 주덕한 엔지오 ‘전백련’ 대표로
대한민국 ‘대표 백수’가 더이상 ‘백수’가 아니다?

인터넷카페 ‘백수회관(cafe.daum.net/backsuhall)’ 운영자이자 전국백수연대 대표, 청년실업극복네트워킹센터 ‘희망청’ 소장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표 백수’ 주덕한(38)씨의 신분에 중대 변화가 생겼다. ‘백수’가 아니라 시민단체 대표가 된 것이다. 지난달 17일 전국백수연대가 서울시 정식 비영리민간단체(NGO)로 등록되었다. 그동안 백수연대에서 해왔던 청년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취업·창업 지원, 상담서비스 진행, 인터넷 카페 관리 등의 일상적인 활동 외에 주씨에게 민간단체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책임이 맡겨졌다. 정부의 실업극복 대책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뿐 아니라 백수들의 이해와 권익을 대변하는 일도 맡아야 한다. 백수라는 꼬리표를 떼게 됐지만, 지난 1일 서울 홍익대 인근 ‘희망청’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오히려 무거운 짐이 어깨를 누르고 있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임의 백수단체로 있으니 의견 수렴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장난하나’?”

“모든 사람은 다 쓸모가 있어요. 하지만 회사는 희망연봉을 적게 하거나 나이 등을 보고 능력과 상관없이 ‘비용’만 감안해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큰 것 같아요.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어서 고용 불안 위험에 놓이게 되다보니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고요. 결국 청년들의 능력과 실험, 도전정신을 뺏고 있는 셈이죠.”


백수연대가 민간단체로 전환한 데는 정책관련한 의견 수렴과정에서 ‘백수’들이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동안 ‘백수연대’ 명의로 공문이나 의견서를 보내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각종 토론회나 공청회 과정에 ‘백수’ 대표로 참석할 수 없었고, ‘백수인권선언’을 부르짖어도 장난으로 치부되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나 지자체의 구호가 정부의 고용선진화서비스가 정작 실업자들에게 와닿을 수 없었다.

“대졸자 10명 가운데 4명이 백수가 되고, 젊은이 두명 가운데 한명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에서 보듯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120만명의 백수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도 정부대책 속 120만명 안에 정작 개인 하나하나는 없어요. 이들이 겪는 고통이나 외로움, 상실감이 어떤지,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고질적인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이런 거 말이에요.”

“백수 상대 1대1 상담 주력하고 취업 시스템 개선할 것”

주씨는 지난 10여년 백수생활을 했다. 백수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의 경험에서 보면, 일자리가 없는 상태보다 이력서 낸 뒤 선택받지 못한 데서 오는 상실감,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냉대가 주는 심리적 고통이 더 컸다. 그런데도 사회는 실업의 원인을 ‘백수’에게 몰아간다. 실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이 잘나지 못했거나 게을러서, 실력이 없어서라고 폄훼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실업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거나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자리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대표. 김미영 기자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대표. 김미영 기자
그는 “백수는 더이상 설 곳이 없다. 마음을 열 곳도 마땅치 않다”고 말한다. 민간단체인 백수연대가 중점사업으로 1대1 상담 시스템을 도입하고 사회 관계 적응력을 키우는 프로그램 운영을 설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업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접근과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해요. 일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백수의 아픔을 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청년 실업자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그들이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선착순 달리기처럼 진행되고 있는 취업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나오지 않는 한 청년 실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백수에게도 원칙은 필요 “좌절은 없다. 최소 생계비는 직접 조달한다”

주씨도 처음부터 백수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성균관대) 졸업 뒤 번듯한 인터넷업체를 1년 넘게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3개월간의 유럽여행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으로 96년 회사를 그만둔 뒤 이듬해 ‘백수생활 가이드북’을 펴내면서 원조백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백수는 말 그대로 ‘하얀손’을 가진 사람이에요. 비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죠. 때문에 명랑한 백수가 되어야 해요. 우울하면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할 수 없어요. 잘못된 현실을 따지고 고치려 하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아야죠. 공자도 천하의 백수였고,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한동안 백수였는데, 부끄러울 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는 백수에게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좌절하지 말 것, 최소한의 생계비는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직접 조당할 것, 돈이 생기면 책부터 구입할 것 등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15만~20만원 가량의 생활비는 직접 조달한다.

“백수는 ‘소개팅’ 기회도 없어…올해 말이나 내년 초 결혼할 생각”

현재 서울 중곡동 누나집에서 얹혀 살고 있는 그는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아직까지 백수생활을 이해하는 여자친구를 만난 것은 아니다. 다만,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백수이지만,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결혼정보회사 가입이나 소개팅 등의 자리에서 ‘백수’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찬밥 신세입니다. 한마디로 백수들의 결혼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죠. 백수라는 것이, 개인의 경제적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특히 결혼을 하게 되면서, 백수들이 더 큰 책임감으로 백수를 탈출할 수도 있는데도 말이예요.”

그는 “백수들에게 일자리가 제공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수를 대하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먼저 없어져야 한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요즘 백수는 개인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라며 “마치 능력이 없어 백수가 된 것처럼 재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백수를 ‘하는 일이 없는 사람’으로 정의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봐주는 주변의 시선이 있어야 합니다. 백수나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일자리 부족의 문제, 고용시스템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에 목소리 높이는 변호인단 “불법 수사” 1.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에 목소리 높이는 변호인단 “불법 수사”

윤 ‘구속 연장 재신청’ 당직법관이 심사…검찰 “보완수사 가능” 2.

윤 ‘구속 연장 재신청’ 당직법관이 심사…검찰 “보완수사 가능”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3.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황당 윤석열·김용현 추종 극우에 불안”…다시 광화문 모인 깃발들 4.

“황당 윤석열·김용현 추종 극우에 불안”…다시 광화문 모인 깃발들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5.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