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정여울 지음. 강 펴냄. 1만2000원
정여울 지음. 강 펴냄. 1만2000원
정여울씨는 말하자면 ‘고학력 백수’다. 공부가 좋아 죽어라 공부하고 국문학 박사과정까지 마친 뒤, 그가 직면한 물음은 ‘직업으로서의 학문’, 즉 학문으로 먹고 살 수 있는가, 였다. 정씨는 엄숙하고 고고한 학문의 전당에 자신을 바치겠노라는 묵직한 결론 대신, 그동안 섭렵한 다종다기한 ‘텍스트’들 사이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길을 택했다.
작가는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커피값 내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보다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떠올리고, 자본주의의 상품교환 논리를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가 싶더니 “교환에 빗장을 지르는 증여의 물결”을 만들자며 흥분한다. 그의 사유 안에서, 칸트와 헤겔은 <다빈치 코드>나 <프렌즈>(미국 드라마 시리즈)과 같은 무게로 대접받는다. “텍스트를 내 맘대로 오려붙여 원본보다 더 아름다운 텍스트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이 당돌한 아가씨, 칼날 같은 통찰력을 내보이다가도 문득 감정과 추억이 담뿍 담긴 개인사를 풀어놓는 작가의 ‘수다’에 동참하면, 어느새 “미디어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유토피아”에 가 닿아 있을지 모른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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