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시설공단, 자사직원에 돈 준 기업 계약해지
법원 “뇌물 적은데…제재 철회를” 자정노력 막아
법원 “뇌물 적은데…제재 철회를” 자정노력 막아
공기업이 뇌물을 건넨 건설업체에 불이익을 주려했으나 법원이 이에 제동을 거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부패를 엄격히 다스려야 할 법원이 오히려 공기업의 자정노력마저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전지법 민사8부(재판장 금덕희)은 최근 발주처인 한국철도 시설관리공단 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ㅅ기업에 대해 공단 쪽이 계약 해지 및 1년간 입찰참가 자격 제한 조처를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공단 쪽 조처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공단은 1997년 공단과 ‘철도이설 건설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한 ㅅ기업의 임원 박아무개씨 등 2명이 올 1월 공단 직원 손아무개씨에게 “앞으로 건설공사를 잘 봐 달라”며 현금 200만원을 건네주다 적발되자, ㅅ기업과 맺은 ‘윤리실천협약’ 등에 따라 지난 6월 해당공구의 계약을 해지하고 앞으로 1년 동안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했다. 돈을 건넨 박씨는 돈을 건네기 바로 이틀 전과 일주일 전 공단 쪽이 벌인 두 차례의 윤리교육에 참여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청렴계약제’로도 불리는 윤리실천협약은 건설업계의 뿌리 깊은 부패 관행을 없애기 위해 공공기관과 건설회사가 맺은 자율계약으로, 자치단체나 공기업 등이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부패방지 정책이다. 공단과 ㅅ기업은 지난해 3월 “공단 임직원에게 50만원 이상의 금품을 부정하게 제공하면 계약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해지한다”는 내용의 윤리실천 협약을 맺었으며, 공사계약 특수조건 등에도 공단 직원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ㅅ기업은 법원에 ‘계약해지 등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제재가 과중하다는 등의 이유로 ㅅ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공사금액이 600억원 가량에 이르고, 공정도 44% 정도 진척된 점에 비춰, 소액의 뇌물을 건넨 것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면 양쪽은 물론 국민한테까지 경제적 손실을 안기게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공단 관계자는 “공단은 일시적인 손해를 감내하고서라도 잘못된 관행에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공단 쪽은 또 “지난해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업체 두 곳의 계약을 해지하고 2년 동안 입찰을 제한한 선례가 있다”며 “이번 제재가 과도하다거나 형평성을 잃은 것도 아니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는 “법원의 논리대로 하자면 계약 규모가 큰 기업의 부패행위는 처벌할 수 없는 ‘대마불사’의 그릇된 관행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국가청렴위 관계자는 “현재 건설업계의 부패행위를 규제하는 건설산업 기본법은 금품의 액수가 클 경우에만 영업정지, 등록말소, 형사처벌 등을 하고 예외규정도 많아 한계가 있었다”며 “이 법이 규제하지 못하는 적은 액수의 금품 제공이나 비윤리적 행위를 제재하려 업체와 공공기관이 윤리실천협약 등으로 자정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해당 재판부는 “이번 결정은 본안 소송이 확정될 때까지 계약해지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게 목적일 뿐 종국적인 판단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안 소송에 걸리는 기간 등을 고려할 때 ㅅ기업은 사실상 계약만료 기간까지 공사를 계속할 수 있게 돼 이번 제재는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점차 확산되고 있는 공공기관과 업체의 자정노력이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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