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실명 보도와 ‘조직적 범죄’ 예단은 문제 없었나
언론에 다뤄지는 피의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될 수 있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당사자인 지아무개(50)씨와 박아무개(52)씨의 실명 보도와 인권침해 논란을 계기로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박 대표가 피습을 당할 당시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집어 던지는 난동을 부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지씨와 ‘공범’으로 간주됐던 박씨는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심각한 명예 훼손과 인권 침해를 겪었다. 매달 2천원씩 당비를 내는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이라는 점 때문에 지씨와 함께 ‘정치 테러범’, ‘살인 미수’ 혐의가 언론에 의해 덧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술에 취해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는 박씨의 ‘자기변호’는 묻혔다. 체포된 지 사흘 만인 24일 저녁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풀려났지만 그는 <조선>, <동아>, <중앙>을 비롯 <에스비에스>, <오마이뉴스> 등에 박씨의 이름과 근무지, 과거 행적, 정치성향 등이 상세히 보도되면서 그는 돌이킬 길 없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피습 당사자인 지씨는 실명과 사진 공개 외에 휴대폰 사용 및 통화 내역, 신용카드 사용내역, 전과 및 유흥업소 바지사장 이력등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 “지나친 사생활 노출로 인한 명예 및 인권 침해 가능성 상존”
언론학자들은 지씨와 박씨를 향한 인권침해 기사의 원인을, 정치적 의도를 품은 일부 신문들의 근거없는 ‘단정’과 ‘선정적 보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사실 전달보다 근거가 부족한 의혹을 부풀리는 데 주요한 언론들이 앞장서 왔다는 지적이다. 박 대표를 향해 ‘커터칼 테러’를 저지른 지씨와 맞물려, 같은 장소에서 난동을 부린 박씨가 우리당 당원이라는 점은 언론에 의해 크게 부각되었고 박씨의 ‘술김 난동’은 지씨의 ‘테러’에 버금가는 혐의로 다뤄졌다. ‘술김 소란’을 피운 박씨는 지씨에 못지않은 사생활 및 인권 침해를 겪어야 했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은 “몇몇 언론의 정파적인 관점 때문에 피의자의 실제 의도와 상관 없이 배후가 있는 정치 테러로 몰고 간 것은 언론의 기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보도로 인해 현재까지 배후가 있는 것처럼 오인되거나 경찰과 검찰 수사에 의혹이 있는 것처럼 비추도록 한 언론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공인 아닐 땐 범죄 피의자 실명보도 최대한 삼가야 언론은 공공성을 잣대로 실명보도 여부를 결정한다. 기사가 다루는 사안이 공공성을 띠는 경우에, 또는 공인에 의해 일어난 일일 경우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난 식목일 이해찬 국무총리 골프 파문에 연루된 인사와 아내를 살해한 김아무개 청와대 행정관, 떡값을 받은 검사, 총기난사 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 일병, 연쇄살인범 유아무개씨의 실명을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원도 지난 1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과 관련해 특정인이나 대상의 이름을 밝힌 기사라도 공익 목적으로 작성됐다면 언론사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 실명 보도에 힘을 보탰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지씨와 박씨의 경우를 보자. 실명과 사진, 과거 행적 등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의 주변 인물들은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어야 했고, 기자들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주변인물들의 신분도 일부 노출됐다. 특히 박씨는 공공에게 경각심을 줄 만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공인도 아니었지만 그의 실명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어떤 피의자든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 확실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원칙적으로 무죄를 적용하고, 범법사실을 함부로 공표해선 안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검찰의 피의사실공표 관련 가이드라인은 △범인을 검거하거나 중요 참고인 또는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범죄로 인한 피해의 방지와 범죄의 예방을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민의 의혹 또는 불안을 해소하거나 기타 공익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박씨의 경우는 어느 것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실명 공개는 잘못된 보도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건 무관한 박아무개씨 심각한 사생활 및 인권 침해 피해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5월30일 논평 ‘피의자 인권 이토록 짓밟는 의도가 뭔가’에서 “지씨의 피습행위가 용납될 수 없는 범죄로 비판은 당연하지만 보도 과정에서 지씨의 인권 보호라는 민주주의 대 전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며 “지씨의 이름과 사진, 피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박씨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조선·중앙·동아가 22일자부터 피의자 지씨의 실명과 함께 얼굴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공개했고, 중앙·동아가 사건과의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은 박씨의 실명까지 공개해 지씨와 박씨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피의자와 피희자 주변 사람들의 인권까지 고려한 신중한 보도”를 촉구했다. 정연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도 “지씨의 경우 사건의 성격상 실명 보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지만 오해를 살 수 있는 보도는 사실 확인 전까지 보도를 자제했어야 한다”며 “박씨의 경우 난동을 부린 죄밖에 없고, 피습과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는데 개인의 신상이 너무나 자세하게 공개돼 심각한 인권 및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가 ‘무혐의’로 풀려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박씨의 공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그의 실명과 상세한 개인정보를 공개했던 당시 언론들은 더이상 박씨를 주목하지 않고 있다. 민언련이나 언론계 인사들이 지적했듯, 일부 언론은 보도 과정에서 박씨의 인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는 유감표명도 없다. 김영욱 위원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정 가운데 하나인 선거 유세에서 지씨와 박씨가 난동(피습)을 부린 것 자체가 공공장소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공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 실명 보도 원칙이 적용됐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박씨의 경우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린 것인데, 이를 갖고 그의 직장이나 정치 성향 등을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명백히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다. 언론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언론학자들은 지씨와 박씨를 향한 인권침해 기사의 원인을, 정치적 의도를 품은 일부 신문들의 근거없는 ‘단정’과 ‘선정적 보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사실 전달보다 근거가 부족한 의혹을 부풀리는 데 주요한 언론들이 앞장서 왔다는 지적이다. 박 대표를 향해 ‘커터칼 테러’를 저지른 지씨와 맞물려, 같은 장소에서 난동을 부린 박씨가 우리당 당원이라는 점은 언론에 의해 크게 부각되었고 박씨의 ‘술김 난동’은 지씨의 ‘테러’에 버금가는 혐의로 다뤄졌다. ‘술김 소란’을 피운 박씨는 지씨에 못지않은 사생활 및 인권 침해를 겪어야 했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은 “몇몇 언론의 정파적인 관점 때문에 피의자의 실제 의도와 상관 없이 배후가 있는 정치 테러로 몰고 간 것은 언론의 기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보도로 인해 현재까지 배후가 있는 것처럼 오인되거나 경찰과 검찰 수사에 의혹이 있는 것처럼 비추도록 한 언론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공인 아닐 땐 범죄 피의자 실명보도 최대한 삼가야 언론은 공공성을 잣대로 실명보도 여부를 결정한다. 기사가 다루는 사안이 공공성을 띠는 경우에, 또는 공인에 의해 일어난 일일 경우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난 식목일 이해찬 국무총리 골프 파문에 연루된 인사와 아내를 살해한 김아무개 청와대 행정관, 떡값을 받은 검사, 총기난사 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 일병, 연쇄살인범 유아무개씨의 실명을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원도 지난 1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과 관련해 특정인이나 대상의 이름을 밝힌 기사라도 공익 목적으로 작성됐다면 언론사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 실명 보도에 힘을 보탰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지씨와 박씨의 경우를 보자. 실명과 사진, 과거 행적 등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의 주변 인물들은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어야 했고, 기자들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주변인물들의 신분도 일부 노출됐다. 특히 박씨는 공공에게 경각심을 줄 만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공인도 아니었지만 그의 실명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어떤 피의자든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 확실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원칙적으로 무죄를 적용하고, 범법사실을 함부로 공표해선 안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검찰의 피의사실공표 관련 가이드라인은 △범인을 검거하거나 중요 참고인 또는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범죄로 인한 피해의 방지와 범죄의 예방을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민의 의혹 또는 불안을 해소하거나 기타 공익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박씨의 경우는 어느 것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실명 공개는 잘못된 보도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건 무관한 박아무개씨 심각한 사생활 및 인권 침해 피해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5월30일 논평 ‘피의자 인권 이토록 짓밟는 의도가 뭔가’에서 “지씨의 피습행위가 용납될 수 없는 범죄로 비판은 당연하지만 보도 과정에서 지씨의 인권 보호라는 민주주의 대 전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며 “지씨의 이름과 사진, 피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박씨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조선·중앙·동아가 22일자부터 피의자 지씨의 실명과 함께 얼굴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공개했고, 중앙·동아가 사건과의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은 박씨의 실명까지 공개해 지씨와 박씨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피의자와 피희자 주변 사람들의 인권까지 고려한 신중한 보도”를 촉구했다. 정연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도 “지씨의 경우 사건의 성격상 실명 보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지만 오해를 살 수 있는 보도는 사실 확인 전까지 보도를 자제했어야 한다”며 “박씨의 경우 난동을 부린 죄밖에 없고, 피습과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는데 개인의 신상이 너무나 자세하게 공개돼 심각한 인권 및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가 ‘무혐의’로 풀려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박씨의 공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그의 실명과 상세한 개인정보를 공개했던 당시 언론들은 더이상 박씨를 주목하지 않고 있다. 민언련이나 언론계 인사들이 지적했듯, 일부 언론은 보도 과정에서 박씨의 인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는 유감표명도 없다. 김영욱 위원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정 가운데 하나인 선거 유세에서 지씨와 박씨가 난동(피습)을 부린 것 자체가 공공장소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공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 실명 보도 원칙이 적용됐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박씨의 경우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린 것인데, 이를 갖고 그의 직장이나 정치 성향 등을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명백히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다. 언론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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