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반응 들어보니
기권자들 “낮은 투표율로 민심 보여줘야”
기권자들 “낮은 투표율로 민심 보여줘야”
예상대로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며 민심의 ‘물줄기’가 확인됐다. 이번 선거에서 주권자들은 ‘승패’나 ‘당락’과 별개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 참여한 시민들의 상당수는 이번 선거에서 집권당에 대한 강한 실망과 불만을 표시했고,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유권자들 상당수는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아닌 노무현 정부 심판”=시민들의 다수는 이번 선거에 대해 ‘여당에 대한 심판’이라고 밝혔다. 자유기고가 이성호(27·서울 동대문구)씨는 “정부가 뭔가 한 일이 있어야 잘하고 못하고를 평가할 수 있을 텐데, 그동안 여당은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여당의 참패는 당연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개혁과 서민의 편에서 열린우리당이 타협 없이 확실히 매듭짓기를 바랐다”며 “지지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노무현 정부는 실패했고, 이번 선거에서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백동구(34·회사원)씨는 이번 선거에 대해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점에 의미가 있으며, 그런 기준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열린우리당은 원래 부패한 정당인 한나라당보다 많은 기대를 받았으므로, 무능함과 부패를 보이면서 더 가혹한 비판을 받은 것”이라며 “앞으로 어떤 정당이든 경제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집권에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 일찍 투표를 마쳤다는 신중석(34·송파구)씨도 “이번 선거에서 주권자들은 국민에게 희망과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 집권당의 무능에 대해 심판했다”며 “정당 간 대결 때문에 지역 의제나 생활정치의 문제가 두드러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선거,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지금까지의 선거가 사회나 개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극단적 평가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개인택시 기사 전아무개씨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며 “(경험상) 찍어서 당선된 사람이 부패하거나 무능해지지 않은 적이 없는데, 굳이 투표를 해서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권 이유를 보면, 나이든 사람들 가운데선 ‘정치권에 대해 혐오’를, 젊은 사람들은 ‘무관심’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따른 정치가 유권자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인식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 2학년인 염나래(21·서울 송파구)씨는 “거리의 선거 포스터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남우세스럽고 선거 관련 얘기를 하는 사람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며 “선거라는 게 우리 사회나 개인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니까”라고 선거 불참 이유를 말했다.
서울대 도서관 앞에서 만난 김재형(26·독어교육4)씨도 “지방자치는 정당보다 공약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오늘 아침까지 선거공보를 보고 고민했지만, 다들 내용도 부족하고 진정성이 없어 보여서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방송작가 차경희(30·경기 성남시 분당구)씨는 “투표하는 문제로 남자 친구와 실랑이까지 벌였다”며 “지금의 정치인들을 지지해준다는 게 말이 안 되고, 낮은 투표율로 민심을 보여주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대안 정치를 기대한다”=기존의 보수·수구적인 정당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은 대안적 정치를 기대하며 투표하기도 했다. 회사원 김경수(43·경기 수원시 권선구)씨는 “한나라당은 전통적인 부패정당이고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하는 짓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며 “기존의 두 정당 가운데는 찍을 곳이 없어서 대안적인 정당에 표를 줬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선거를 보면 선거는 민주주의 정치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쇼나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고형석(38·성남시 분당구)씨는 “열린우리당이 스스로 민주개혁세력이라고 하지만 정책적으로 보면 한나라당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민주세력 대연합론과 같은 열린우리당의 퇴행적인 모습을 보고 나서 투표했다”고 말했다. 진보 정당을 선택했다는 서울 광진구에 사는 최성룡(35·회사원)씨도 “노동자나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당이 정치적으로 힘을 가져야 한다”며 “이번 선거 이후에 한국 사회가 다양한 목소리가 함께 존재하는 구조로 다시 짜였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전종휘 임인택 이재명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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