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서울대 학생회관 인근 벤치에 서울대 학생들이 앉아 있다. 김미영 기자
무관심 속 ‘진실되지 못한 사과’에 학내여론 ‘탄핵’ 거론도
인디밴드 리더, 나이트클럽 DJ, 삐끼, 동대문 옷가게 지게꾼, 합기도 사범 등 다양한 이력과 한총련 탈퇴 선언(5월10일)으로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황라열(30·종교학과 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학력 및 경력 허위기재와 성인 오락기 제조업체의 5000만원 기부금 약정 등으로 입길에 올랐다.
사태가 확산되자 황씨는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we.snu.ac.kr)에 사과글을 올리고, 대학언론인 스누라이프(snulife.com) 등을 통해 공식 사과했지만 황씨를 바라보는 눈초리는 싸늘하다. 황씨가 26일, 29일, 30일에 걸쳐 해명 및 사과글을 게재했지만, 홈페이지와 스누라이프에는 비난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총학생회장이 서울대 학생을 대표하는 자리인데다 ‘공인’으로서 도덕성 시비까지 불거지고 있고, “본인의 부족함과 욕심 때문이었다”는 사과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단과대는 총학생회장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학생들 또한 사퇴를 포함한 구체적인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 한다는 소리를 내고 있다.
◇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 및 스누라이프 “사과에 진실성이 없다”며 성토글 이어져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와 스누라이프 게시판에는 황라열 총학생회장을 비판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황씨가 26일 사과문을 통해 98년도 고려대 의예과 입학과 <한겨레21> 수습기자 이력과 관련해 “개인의 부족함과 욕심으로 인해 사실과 다르게 명시되었음을 인정하고 사과를 구한다”며 “개인의 부족함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과를 드리며 멋진 학생회로 거듭나겠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학생들의 여론은 호의적이이었다.
그러나 황씨의 해명 이후에도 문제는 가라앉지 않았다. ‘바다이야기’ 및 ‘지코프라임 기부금’, ‘억대 연봉설’, ‘스누나우에 실린 약장사 논란’ 등의 의혹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황씨의 해명도 화를 불렀다. 황씨는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데, 말꼬리 잡기에 지칠 대로 지쳤다”, “해명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노가다스럽다는 생각뿐입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황씨는 30일 ‘스누라이프’에 올린 글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저의 잘못은 ‘입학’과 ‘합격’의 표현 차이, ‘수습기자’ 이력 두가지 밖에 없다”며 “‘입학’과 ‘합격’의 차이가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이며, ‘수습기자’ 이력은 이미 검증된 수십개의 이력과 함께 개인 홈페이지에서 선거 4일 전 공식 선거홈페이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부주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반발을 불렀다.
◇ “총학생회장 허위 이력 게재…그런 것 몰라요~”
그러나 30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의 반응은 차분함 일색이었다. 서울대 게시판에는 취업정보나 주변의 식당 명함, 동문회 안내 등의 벽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총학생회쪽에서 황씨와 관련해 나온 벽보는 5월22일 <대학신문>에 보도된 도박게임 회사로부터의 기부금 약정과 관련된 해명글뿐이었다.
서울대 학생들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총학생회장의 도덕성 시비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총학생회장이 이력을 허위로 부풀였다고요?” “도박 게임회사로부터 기부금을 받는다고요?” 등 기자에게 되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학본부 인근에서 우유팩을 차던 공대생 4명은 “전혀 몰랐다”며 “그런 일에 관심 없다”고 말했다.
사건을 접한 학생들도 “실망했다” 등의 간단한 의견 표현만 할 뿐 사태의 심각성이나 해결책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학과나 친구 등의 또래집단 사이에서 거의 회자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응용생물학과 4학년 김대현군은 “대부분 총학생회장이 ‘이력을 속였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학생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기계과 3학년 이아무개군도 “총학생회장의 이력이 학생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슈가 되겠지만 대체로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총학생회장이 책임지고 사퇴를 포함한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
하지만 스누라이프와 몇몇 언론을 통해 사건을 접한 학생들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기계항공학과 1학년 김재석군은 “황라열씨가 마음에 들었는데 실망스럽다”며 “탄핵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전기컴퓨터공학부 1학년 송아무개군도 “황씨의 사과 수준이 미흡하다”며 “황씨의 거짓말이 사실이고, 그 거짓말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면 탄핵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농경제사회학부 3학년 박아무개양은 “황씨가 특이한 경력으로 주목을 받아 당선이 된만큼 그 이력이 거짓이라면 당선의 명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현재까지 황씨의 사과가 진실돼 보이지 않고,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며 탄핵까지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경제학부 2학연 이소헌양도 “총학생회장의 처신 자체가 학생을 속인 도덕성 시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사과와 상관없이 사퇴를 포함한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최진혜 약대 학생회장은 “허위 이력 등 도덕적 문제는 돌이킬 수 없다”며 “이미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고, 서울대 학우들의 명예를 훼손한 만큼 자진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 “사퇴까지야…진실된 사과와 의혹 규명 정도면 된다”
일부 학생들은 신중론을 폈다. 익명을 요구한 법대 1학년 아무개군은 “황씨의 해명과 언론의 보도내용이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으며, 황씨의 해명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계과 3학년 이아무개군도 “총학생회장 탄핵 등 강경대응보다는 진실 규명을 전제한 뒤 향후 총학생회가 분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으며, 경제학부 2학년 박보미씨는 “과거 총학생회의 투명하지 못한 재정운영과 도덕성 문제 개선을 내건 총학생회장이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 실망스럽다”면서도 “허위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는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탄핵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종하 법대 학생회장은 “학내 여론이 탄핵쪽으로 기울고 있다면 탄핵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아직까지 단과대 가운데 탄핵안을 준비하는 단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6월2일 열리는 임시 총운영위에서 논의되는 사안을 봐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문대, 사회대 등 단과대도 현재까지 입장표명을 안하고 있다.
결론은 다음달 2일 열리는 총운영위원회와 12일 열릴 전학대회에서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서울대 학생들의 의견이 어떻에 모아지느냐에 있지만 탄핵이 발의되면, 다음달 12일 열리는 전체 학생 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 넘겨지며 대표자 회의는 참석자 2/3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이 결정된다.
서울대 쪽은 총학생회장의 허위 경력 기재와 관련해 “학생 자치기구인 학생회 활동을 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총학생회장의 이력 위조 논란에 대한 확인과정을 하고 있으며, 때가 되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황씨는 30일 ‘스누라이프’에 올린 글을 통해 “고대 의예과 입학 건과 <한겨레21> 수습기자 경력 허위기재와 관련해 이 두가지 문제가 탄핵의 요구를 충족시켜 다수의 학생들이 탄핵에 동의해 그런 결정이 난다면 기꺼이 따르도록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게시판에 붙어 있던 서울대 총학생회 대자보가 떨어진 채 땅바닥에 팽개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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