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정신성의약품에 취해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신아무개(29)씨에게 20년 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24일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신씨에게 “피해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음에도 반성하지 않고, 증거 인멸에 급급했다. 중형이 선고될 필요가 있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신씨에 대해 20년을 구형한 바 있다.
신씨는 지난해 8월2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성형외과에서 피부 시술 명목으로 미다졸람과 다이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받은 뒤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차량을 운전하다 길을 지나던 20대 여성 ㄱ씨를 들이받고 구호조처 없이 달아난 혐의를 받아 경찰에 체포됐다. 뇌사 상태에 빠졌던 ㄱ씨는 사고 3개월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신씨 쪽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구호를 위해 현장을 이탈했다’고 변명했지만 최 판사는 “신씨가 사고 당일 교통사고를 내고도 2분간 차량에서 머물다 신고를 하거나 피해자를 구호하려 않고 자신이 투약받았던 성형외과 쪽으로 걸어갔다”며 “지나던 시민의 신고로 경찰과 구급차가 출동했지만 다친 피해자를 보고 웃는 등 이상 행동을 했다”고 했다.
최 판사는 “검찰이 기소한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신씨가 피부과 진료를 빙자해 케타민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상습적으로 처방받아온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인 권나원 변호사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의 구형이 조금 더 높았더라면 조금 더 중한 형이 선고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통상 검사의 구형에 따라 선고가 이뤄진 경우에 검찰에선 항소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유족들과 항소 여부를 논의할 것이고, 신씨 쪽에서 항소할 것이므로 중형이 확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부장 김연실)은 사고 당일 신씨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했던 40대 의사 염아무개씨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준강간 등 혐의로 이날 구속기소했다. 염씨는 신씨에게 업무 외 목적으로 프로포폴, 미다졸람, 디아제팜, 케타민 등을 혼합 투여하고 의사면허 정지기간에 환자들에게 프로포폴 등을 주사한 혐의를 받는다. 염씨에게는 수면 마취 상태의 환자를 불법촬영 하고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혐의도 적용됐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