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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연을 여러번 볼 정도로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예림(24)씨는 어머니와 함께 최근 한 공연을 보러 갔다가 되려 “눈치가 보였다”는 후기를 들었다. 1막의 러닝타임이 80분 정도라 한 자세로 앉아있기에 힘들었는데, 뒷사람이 한숨을 쉬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시체관극’이라는 문화가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19일 얘기했다. 뮤지컬 공연 관람 문화 중 하나인 ‘시체관극’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체관극이란, 기본적인 관람 예절을 넘어 옷자락이 부스럭거리거나 고개만 움직여도 눈치를 주는 관람 문화를 이르는 말로 ‘시체처럼’ 가만히 앉아 극을 관람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화는 환호를 지르는 콘서트나 팝콘을 들고 보는 영화와 다르게 뮤지컬·연극에만 있는 문화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일 한 공연전문지 기자가 옆자리 관객과 제작사의 반대로 공연 중 메모를 하지 못해 나왔다는 후기를 기사로 썼는데 이후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관람 예절 기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시체관극’을 지나치게 적용하면 노인·아동·장애인 등의 관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지원(21)씨는 “부모님과 공연을 보러 가면 일부러 복도 쪽에 앉힌다. 엄마가 몸이 좋지 않아 체온 조절이 안 되다 보니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서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했던 20대 중반의 임아무개씨는 “현재 관극 매너의 기준은 엔(n)차 관람까지도 가능한 20대의 신체와 경험에 한정돼 있다”고 얘기했다.
또 배우 입장에서도 극의 장르나 분위기에 따라 객석의 반응이 나오는 게 좋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뮤지컬 배우 조수정(24)씨는 “연기에 집중해야 할 장면에서 소음이 발생하면 극을 이끌어가는 데 방해가 되지만,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고자 의도한 장면에서 반응이 없으면 그것대로 또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결국 시체관극 문화는, 고가의 관람권을 단기간에 판매하는 공연계 수익 구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명현(22)씨는 “알바비의 대부분을 뮤지컬에 투자하는 만큼, 더 좋은 환경에서 집중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안내원으로 근무하는 20대 중반 이아무개씨는 “소·중극장은 좌석 간격이 매우 좁아서 관객끼리 밀착하게 되니 소리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공연영상학과)는 “우리나라에서만 ‘시체관극’이나 ‘관크(관극을 방해하는 행위)’라는 단어가 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선 옆자리 관객 매너로 항의했다는 건 한번도 경험하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공연에 고급재라는 이미지를 심고 ‘지불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도 효용가치가 충분하다’는 전략을 쓰다 보니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공유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 교수조차도 옆자리 관객이 “고개를 너무 움직인다“는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원 교수는 “가격을 내려 진입장벽을 낮추는 등 외연을 확장해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수 문화평론가도 “외국과 달리 우리는 일상적으로 뮤지컬·연극을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체관극’은 궁극적으론 접근성과 가격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관극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생긴 문제기도 하다. 공연에 대한 예의를 스스로 지키자는 차원으로 논의의 방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