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의 관계사인 천화동인 6호의 실소유자로 의심받는 조우형 씨가 5월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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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대장동 민간사업자 조우형씨에 대한 처분을 이례적으로 미루는 와중에 조씨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의 핵심 참고인 역할을 하는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던 피의자가 아직 기소되지 않은 채, 다른 사건에서 검찰에 유리한 진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실상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의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팀장 강백신 반부패수사1부장)은 최근까지 조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수차례 불러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보도 기자들을 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하려면 ‘허위라는 점을 알고도 보도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검찰은 ‘당시 취재 기자들에게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는 조씨의 진술을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문제는 조씨가 대장동 개발로 283억원을 배당받은 천화동인 6호의 실소유주로 다른 대장동 민간사업자와 공범인데도 유달리 기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씨는 2015년 3∼4월께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알게 된 서판교터널 개설 등 성남시 내부 비밀을 이용해 올해 1월까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함께 모두 7886억원의 불법 개발이익을 챙기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조씨가 김만배, 남욱 등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공범이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검찰은 지난 5월 조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그 뒤로 7개월가량 시간이 흘렀지만 검찰은 조씨에 대한 기소도, 불기소도 하지 않고 있다. ‘검찰 처분에 운명이 맡겨진’ 조씨를 불러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관련 진술을 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대장동 민간사업자 중 한명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 대한 처분과 대비된다. 검찰은 김씨의 구속영장을 세차례 청구해 두번을 발부받았고, 재판 중 구속 기간이 만료되자 두차례나 추가 구속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말 곽상도 전 의원의 ‘50억 클럽’ 의혹의 공범으로 추가 기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대장동 관련 대부분의 사건과 관련해 재판받고 있다.
조씨 처분이 유독 늦어지는 것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사실상 ‘플리바게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영장까지 청구한 사람을 여태껏 기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검찰이 편의를 봐주고 필요한 진술을 받아내는 상황으로 짐작된다”면서 “우리나라는 플리바게닝이 제도화돼있지 않기 때문에 투명하지 않게 협상이 이뤄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정황상 (검찰에 유리한 진술을 해주고 관대한 처분을 받는) 플리바게닝이 의심된다”고 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영장 기각 후 이렇게 처분이 미뤄지는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지난 7일 “조사를 더 진행하고 있다. (조씨 기소 등) 구체적인 시기는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사 협조 대가로 피의자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플리바게닝은 한국에선 불법이다.
플리바게닝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서 핵심 증거인 3만개에 달하는 음성 녹음파일을 검찰에 임의제출하며 수사에 협조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도 검찰이 ‘봐주기 구형’을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검찰은 이 전 사무부총장의 별도 뇌물 혐의 재판 1심에서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검찰은 1심 형량보다 낮은 징역 3년 구형을 고집했고, 법원은 또다시 이보다 높은 징역 4년2개월을 선고했다. 이같은 검찰의 행태를 두고 검사 출신인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사실상의 플리바게닝 같은 게 좀 있지 않았겠냐”라고 분석했다.
법적으로는 검사의 구형에 구속력은 없지만, 구형이 양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여럿 있었다. 2005년 당시 박광배 충북대 교수와 김상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이 판사 158명을 대상으로 한 모의배심 실험에서는, 판사가 검사의 구형을 기준 삼아 선고하는 ‘정박(Anchoring)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검찰은 꾸준히 플리바게닝 도입을 주장해왔다. 지난해 12월 이원석 검찰총장도 대검 강연에 참석해 “미국 형사 절차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플리바게닝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 검찰 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0년 법무부는 플리바게닝 법안을 발의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2017~2018년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도 이를 논의한 바 있다.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미 플리바게닝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으므로 불법적인 협상 관행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고, 내부자 증언이 필요한 조직·마약·부패범죄 수사에서 윗선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플리바게닝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범죄자와의 협상’이라는 점에서 국민 정서에 맞지 않고 검찰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플리바게닝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크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플리바게닝이 도입되면 협조를 구할 피의자와 엄벌할 피의자를 선택하는 등 수사기관의 재량이 매우 커지는 부작용이 생긴다”면서 “아직은 국민의 공감대가 ‘수사의 효율’보다는 ‘실체적 진실 발견’이나 ‘죄에 상응하는 처벌’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인사청문 과정에서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는 헌법상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와 실체적 진실주의에 위반될 우려가 있고, 감형을 대가로 허위자백을 유도하고 진술거부권을 약화시킴으로써 종래 자백에 치우쳐 있던 형사실무 관행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 노력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라고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