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600만명(9일 기준)을 돌파하고 흥행을 이어가며 영화 속 12·12군사반란과 실제 역사를 비교하며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도 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반란군에 맞서 싸운 이태신(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모델), 오진호 소령(김오랑 중령 모델)에 대한 재조명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전두광(전두환씨 모델)의 ‘분노 유발’ 행보 역시 화제다.
특히 영화는 극단의 긴장으로 치닫다 반란군 승리 뒤 전두광이 한 축하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다. 이 장면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군가 ‘전선을 간다’와 뚜렷이 대비되기도 한다. 이 장면은 실화일까.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1980년 1월 보안사 축하연에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 광주K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쿠데타 성공 자축하며 “만족스럽다”
영화 속에서 전두광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은 쿠데타 성공을 자축하는 파티에서 무대 앞으로 나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반란을 주도한 전두광이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는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둔 장면이다. 반란에 성공한 신군부 세력은 한달 뒤인 이듬해 1980년 1월23일 가족까지 참석한 ‘위로 파티’이라는 이름으로 축하연을 열었다. 당시 민영방송이던 티비시(TBC·동양방송, KBS에 통합됨) 소속 유명 연예인들이 참여해 위문 공연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기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는 기쁜 표정으로 애창곡 ‘방랑시인 김삿갓’을 부른다. 지난 8월19일 96살의 나이로 별세한 원로 가수 명국환씨의 대표곡으로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흰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는 노랫말로 시작한다.
한국방송(KBS)이 2007년 공개한 영상을 보면, 영화 속 전두광은 실제 전씨가 노래 부르던 모습을 비슷하게 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을 보면, 당시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전씨는 인사말을 했는데 12·12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잘 수습돼서 오늘 이와 같은 자리 만들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것에 대해 본인으로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며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여러분들의 진정한 충성심과 나라를 위한 군인다운 정신, 생명을 바쳐서라도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보안부대 요원들의 충성심에 대해 본인은 감탄했고, 여러분의 자세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반란을 함께한 부하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는 “‘보안사령관이 실권자다’라는 유언비어가 내용을 잘모르는 국민들간에 오고간다”며 자신의 부하들과 그 가족들에게 ‘불순세력’의 유언비어 확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갈무리
전두광 노래와 대비되는 군가 ‘전선을 간다’“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구슬피 흘러나오는 군가는 전두광의 노래와 대비되며 관객들에게 짙은 여운을 남긴다. 엔딩 외에도 영화 속에서 편곡된 버전이 여러차례 나온다. 영화가 흥행하자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노래가 다시 소환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노래는 군 입대한 장병들이 훈련소부터 접하게 되는 ‘전선을 간다’(우용삼 작사, 최창권 작곡)다. 예비역들 사이에서 나름 ‘인기’ 있는 군가다. 2013년 공군에서, 2014년 국방일보에서 한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군가에 이름을 올렸다.
국방부 블로그를 보면, 전선을 간다는 국방부 정훈국이 1980년~1981년 군가 및 진중가요를 공모했을 때 1981년 8월 5일 군가 부문 가작으로 선정한 작품으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작곡가 최창권씨는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주제가를 작곡했고, 여러 영화 음악에 참여한 바 있다. 작사가 우용삼씨는 국방부 공무원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최근 한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훈련소에서 들었던 군가는 다 별로였던 것 같은데 ‘전선을 간다’는 좋았던 것 같다. 그 노래는 비장하다. 전선에서 용감하게 전진하는 병사들에게 ‘총알이 날아오지만 죽어라’는 식으로 독려하는 노래이다. 노래가사도, 음률도. 전투를 끝내고 허망한 병사들에게 무언가 말을 한다. 그럼에도 계속 전진하라고. 문학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이 노래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