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무개(25)씨가 지난 2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후원 동참 게시글 일부. 정씨 제공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에 등장한 ‘집게 손’이 남성 혐오 표지라는 주장을 두고 “억지 논란이자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라고 비판한 여성단체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찰이 살인예고 글 게시자 추적을 위해 강제수사에 나서는 등 협박 행위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민들은 위협과 협박에 시달리는 단체를 지지하는 의사를 표시하며 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5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검찰은 지난달 28일 ‘페미니스트들을 살해하겠다’고 온라인에 글을 올린 작성자를 특정하기 위해 최근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여성단체들이 게임 제작사 넥슨 본사 앞에서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작성자는 흉기 사진과 함께 “다 죽여버릴 것”이라는 글을 해당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경찰청은 앞서 무차별 범죄 대응 차원에서 살인예고 글 작성자를 일일이 추적해 검거한 것처럼 취지와 관계없이 유사한 협박 글을 올린 작성자들에 대해선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기자회견 이후 단체는 다양한 형태의 위협을 받고 있다. 기자회견 단체 가운데 한곳인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는 불특정 남성들로부터 수십통씩 협박성 전화를 받거나, “송년회 장소가 어디냐”며 찾아오겠다는 식의 위협을 받기도 해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하기도 했다.
민우회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온라인에서는 기자회견 영상을 가지고 조롱하는 형태로 활동가들을 위협하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전화 등을 통해 협박과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며 “내부 법률 자문을 통해 어떻게 법적 대응을 해나갈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민우회의 또 다른 활동가는 “최근 칼부림 사건이 논란이 됐던 만큼 온·오프라인 위협으로 크게 불안하다”고 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페미니스트를 겨냥한 협박은 미국 등에선 ‘증오범죄’라고 불릴 수 있고, 법적 처벌도 가능하다”며 “협박 등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불법에 대해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이런 위협은 개인이나 집단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부어 상대방의 침묵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공격 행위”라며 “법적 처벌은 물론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미온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30일 한 엑스(X·옛 트위터) 유저가 올린 후원 게시글. 엑스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시민들은 위협·협박에 시달리는 여성단체에 후원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 2일 3천원 문자 후원에 나선 정아무개(25)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메이플스토리’를 즐겨온 이용자로서 소수의 악성 민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청에 압박을 가한 넥슨의 행태에 동의할 수 없었던 와중에 이를 비판하는 민우회 활동가들에 대한 위협이 이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후원에 나섰다”며 “후원으로 활동가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5일 후원에 동참한 박신형(28)씨는 “넥슨의 행동은 소수의 주장에 굴복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혐오와 차별에 동참하는 것이라 생각해 시민으로서 대항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후원하게 됐다”며 “혐오 세력보다는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더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 좋겠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