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최상류인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자리잡은 영풍산업 석포제련소의 모습.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제련소에서 일하다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에 노출된 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법원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기준 이하로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는 이유만으로 백혈병 발병과의 인과관계를 무조건 부인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손혜정 판사는 지난 22일 진아무개(71)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이 사건 사업장의 업무 외에 (백혈병 발발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인에 노출된 것으로 볼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진씨는 57살이던 2009년 12월부터 6년 9개월간 영풍산업 석포제련소의 하청업체인 동진기업과 신창기업에서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용액의 불순물을 없애는 필터프레스 작업과 하역장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그는 2017년 3월 8일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6월 질병과 업무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산재를 불승인했다. 이에 진씨는 2021년 9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의 쟁점은 업무 중에 진씨가 노출된 포름알데히드 노출 정도였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문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해당 작업장에서 노동자 2인이 노출된 포름알데히드 농도는 0 .003ppm 남짓으로 고용노동부 노출기준인 0 .3ppm에 약 1 % 수준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해인자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노출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업성 질병의 이환(병에 걸림)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현재까지 백혈병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의학적으로 확인된 물질은 포름알데히드 뿐이지만, (진씨가 노출된 ) 나머지 발암물질들 이 백혈병 의 발병 또는 악화와 무관하다고 단정하기 어 렵다 ”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진씨가 교대근무와 과로를 한 정황 역시 산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진씨가) 야간근무가 포함된 3조 3교대 형식으로 1일 8시간, 1주 평균 7일(56시간)을 휴일없이 근무했다”며 “(이러한) 업무형태와 업무량이 (백혈병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어도, 앞서 본 포름알데히드와 각종 발암물질 등 업무상 유해요인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진씨의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쳐 백혈병의 발병이나 진행을 촉진하는 원인의 하나로는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단된다”고 했다.
진씨를 대리했던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한겨레에 “의학적으로 규명된 관련성으로 초점을 맞춰버리면 업무상 질병 인정의 범위가 굉장히 좁아진다. 법원이 포름알데히드 외의 발암물질도 백혈병과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이번 재판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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