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밤 10시께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공덕지구대 앞에 순찰차 2대가 주차돼 있다. 고경주 기자
지난 7~8월 무차별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경찰이 범죄 발생 빈도가 높은 지역에 야간 순찰 인력을 몰아주는 ‘중심지역관서’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우범 지역의 도보 순찰 인력과 순찰 중인 차량이 늘었다는 게 경찰청 평가다. 그러나 야간 순찰 인력이 줄어든 대다수 지역에선 주민 항의가 빗발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은 제도 취지와 무관하게 과거와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 인력 투입 없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으로 순찰 인력을 늘리려던 구상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2일 밤 한겨레가 서울 마포경찰서 관할 소규모 지구대(공덕·서강)와 파출소(연남·망원·상암)를 찾았더니, 모두 근무자가 상주하고 있었다.
마포경찰서는 중심지역관서 제도 시범사업 지역이다. 마포서 관할 지구대 중 월드컵·용강·홍익지구대가 중심지구대다. 따라서 이들 3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구대와 파출소 5곳은 주말·야간에 상주 인원이 없어야 한다. 대신 이들 지구대·파출소 소속 경찰관은 중심지구대의 지휘를 받아 (주로 관할 지역 외) 범죄 우발 지역 도보 순찰에 투입되어야 한다. 중심지구대 지휘를 받아 도보 순찰에 투입되어야 할 인력들이 자신들의 원래 소속 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셈이다.
마포서 관할 지구대 소속 한 경위는 “상주하지 않고 계속 순찰을 하라고 하는데, 민원을 받아야 하니 최소 한명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대와 파출소가 있는 한 그곳을 찾는 민원인들이 있기 때문에 막상 모든 인원을 빼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주민과 상인들 항의도 거세다. 경찰관 없이 텅 빈 지구대·파출소가 주는 불안감 때문이다. 마포구 망원동의 한 편의점 주인은 “이 동네는 위험한 일이 많은데 파출소가 있으면 (범죄자가) 눈치라도 본다. 아무리 순찰을 돈다고 하지만 가까이 사람이 있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난 20일 밤 찾은 경기 분당경찰서 관할의 수내파출소도 문을 열어두고 직원들 여럿이 근무 중이었다. 이 파출소 소속 경위는 “공식적으로는 야간 근무자는 없어야 하는데 주민들이 불안하다고 해서 근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가능한 한 새벽 3시까진 이곳에서 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이달 초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수내파출소를 이전처럼 운영해달라’는 청원을 제출했는데, 2736명이나 참여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한겨레에 “신고하면 3~5분이면 경찰이 도착했는데 시범사업 이후 (멀리서 출동하다 보니) 10~15분, 늦으면 20분까지도 지연된다는 주민들 불만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도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해 기존 지구대·파출소의 인원을 다 빼지 말고, 최소 인원과 차량은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 9월18일부터 이달 말까지 전국 15곳에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 관계자는 “제도의 주목적은 야간 등에 파출소를 지키던 인력을 최대한 바깥으로 보내는 것”이라며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법은 각 지역에서 재량껏 정하고 있다”고 했다.
애초부터
경찰이 ‘무차별 범죄 대응’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추가하면서 인력 충원 계획 없이 돌려막기식으로 계획을 짠 것부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경찰 직협) 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에 (이 제도와 유사한) 광역 지구대를 운영했는데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3년 만에 원위치가 됐다. 이미 실패한 제도”라며 “부족한 인력을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는 보여주기식 순찰로 무차별 범죄를 예방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경찰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심지역관서 시범사업 지역인 수내파출소 앞 안내문. 인근 아파트 주민은 ‘수내파출소 존속을 위한 청원’을 받아 주민센터에 제출했다. 고경주 기자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고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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