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찰과 서울교통공사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의 지하철 탑승을 막으며 대치를 벌인 모습. 고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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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공사)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원천 봉쇄한다며 ‘지하철 역사 출구 진입부터 막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사는 이를 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근거로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했는데, 정작 경찰은 “공사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집시법에 따른 요청을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설령 다른 법을 적용해도 역사 출구에서 진입 자체를 막기는 어려워 공사가 시민 불편을 명분 삼아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사는 23일 보도자료를 내어 “집시법을 적극 해석해 지하철 전 역사와 열차 내에서의 집회·시위를 금하기 위한 시설보호를 경찰에 요청했다”며 “경찰의 시설보호가 이뤄지면 지하철 역사 및 열차 내에서 시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공사가 근거로 내세운 건 집시법 8조 5항이다. 해당 조항은 주거지 등의 관리자가 집회·시위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시설보호를 요청하면 경찰이 집회·시위를 금지·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경찰은 전장연의 ‘실내 시위’는 집시법상 신고 대상인 옥외 집회가 아니라서 해당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전장연의 실내 시위는 신고 대상이 아니라서 사전에 (시위 개최를) 알 수도 없고, 집시법을 적용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사가 집시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며 “공사에도 집시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공사는 이번 방침 이전에도 헌법이 보장하고 금지 규정도 없는 실내 시위를 제지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다만 서울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지하철 운행 방해 예고가 명백한 경우엔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전장연 시위를 사전 제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과거 인권위 권고도 있어 역사 진입 자체를 제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박한희 변호사는 한겨레에 “전장연 시위는 실내 집회라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닐뿐더러, 집시법상 시설보호 요청 대상은 주거지·학교·군사시설 등이라 지하철 역사 등은 보호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공사는 경찰이 전장연의 물리적 진입을 막는 게 법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동 제한은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공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전장연 시위에 집시법을 적용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는 자문을 받았다”며 “경찰의 공식 답변을 받으면 대응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사는 전장연 시위에 집시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집시법이 아닌 철도안전법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 등을 앞세워온 이유다. 공사 쪽의 이번 ‘무리한 강경책’엔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근 발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전장연이 장애인권리예산 확보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일 약 두달 만에 시위를 재개하자 “사회적 테러”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원천 봉쇄’라는 말을 쓰며 지하철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면 오히려 불법적인 상황을 낳게 된다”며 “정당한 권리를 어떻게 함께 실현해 나갈 것인지 공사가 적극성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손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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