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의료급여(저소득층을 위한 국가의 의료보장제도) 환자 ㄱ씨는 불면증과 불안 장애 등 무려 6개의 만성질환을 지녔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무엇보다 남편의 가정폭력에 따른 스트레스가 큰 요인이었다. 가정폭력상담소와 상담하니 이혼을 권고했고, ㄱ씨는 몇 개월 뒤 이혼했다. 이혼 뒤 우울증과 불면증이 약해지면서 ㄱ씨는 약을 모두 끊고 건강도 좋아졌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전 남편과 자녀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면서 ㄱ씨는 다시 약을 먹지 않을 수 없게 됐다.
ㄱ씨의 경우에서 보듯 건강은 사회적 병인의 해소 없이 진료실의 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한 사람의 건강 수준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 등 심리, 환경 및 유전, 생활습관 등 여러 요인이 얽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려운 경제사정에 고단한 생활로 스트레스가 많은 극빈층인 의료급여 수급자와 그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은 건강보험 가입자 사이에는 어떤 건강 격차가 나타날까. 영주기독병원의 이희영 임상 의사가 이 물음의 답을 찾아보았다.
최근 충북 오송 한국보건복지인재원에서 열린 ‘2023 사회정책연합공동학술대회’에서 이희영 임상의가 발표한 논문 ‘의료급여 수급자와 건강보험 가입자의 임상적 건강 수준의 격차 분석’을 22일 보면, 그는 지난 2018년 경주의 한 병원(100병상 규모의 2차 의료기관)에 재직 중 1년간 병원을 찾은 50~70살 환자 246명(평균 63살)을 추려, 의료급여 수급자(103명)와 건강보험가입자(143명)로 구분해 이들의 질병과 약물 복용 명세를 비교∙분석했다.
분석 결과, 의료급여 수급자는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거의 1.8배 더 많은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환자들은 평균 2.19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으나, 의료급여 환자들은 평균 3.84개로 더 많이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6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동시에 가진 환자는 건강보험 환자군에는 단 1명, 즉 0.7%이었으나, 의료급여 환자군에는 23.3%(24명)에 이르렀다. 의료급여 환자 중에서는 심지어 10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진 이도 있었다. 반대로 만성질환을 1개만 가진 환자는 건강보험 군에선 37%(53명)에 이르렀으나, 의료급여 환자군에선 6.8%(7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만성질환을 겪고, 두 집단이 겪는 질환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인한테 두루 많이 나타나는 ‘다빈도 만성질환’인 고혈압, 고지질혈증, 당뇨병 등은 두 환자군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의료급여 환자군은 근골격계 질환과 위장장애, 기억력 감퇴, 우울 삽화(우울증이 2주 이상 지속하는 경우), 불면증, 불안 장애 등에서 건강보험 환자군에 비해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 예컨대, 불면증의 경우 의료급여 환자의 13.6%(14명)가 수면제를 복용하는 반면, 건강보험 환자군에선 1.4%(2명)에 그쳤다.
이런 차이는 필연적으로 1인당 복용 약물 개수의 차이로 이어졌다. 건강보험 환자군에선 환자 1명이 평균 3.39개의 약물을 복용하는데, 의료급여 환자군에서는 환자 1명이 평균 6.49개로 거의 2배에 가까운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의료급여 환자 중 둘은 매일 15개의 약물을 복용했다.
이희영 임상의는 논문에서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의료급여 환자군은 불면증, 불안 장애 등에서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데, 육체노동과 직업력, 스트레스 상황 등이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의료비 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라며 “의료급여 환자들이 어떤 직업 및 거주 환경과 심리적∙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임상의는 “1개 병원에 1년간 24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서 일반화를 위해선 추가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