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경감이 파출소장 시절 지역 유지와 함께한 자리에 동석하라고 박인아 경위에게 보낸 메시지. 박 경위 휴대전화 갈무리
“ㄱ경감(파출소장)은 진술인이 근무하면서 대부분 사복을 입고 근무했다고 진술하는데 사실인가요?” “진술인은 파출소장인 ㄱ경감의 병가 신청 업무 지시를 받고 4팀장에 대한 병가를 신청했나요?”
파출소장인 ㄱ경감의 접대 강요 등 갑질을 폭로했던 박인아 서울 성동경찰서 경위는 최근 111개 문항, 27쪽에 달하는 감찰 진술조서를 받고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갑질 문제 제기 이후 ㄱ경감이 보복성으로 넣은 민원에 대해 서울경찰청이 감찰에 나선 것이다. ㄱ경감은 박 경위의 비위를 찾아내기 위해 파출소 시시티브이(CCTV)를 개인적으로 돌려본 사실이 드러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되자 “제 잘못을 인정한다”며 사과하고 민원을 취하했지만, 서울청은 ‘징계위 회부’ 의견을 내며 끝내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서울청은 박 경위가 겨울에 근무복 대신 경찰에서 지급하는 ‘형사 점퍼’를 입고 근무한 것을 문제 삼았다. 박 경위가 코로나19에 걸린 팀장의 병가를 대신 신청하지 않은 것도 징계 사유다. 박 경위는 “병가를 대신 신청하라는 ㄱ경감의 지시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서울청은 ‘정당한 지시 불이행’에 해당하는 비위라고 판단했다. 해당 민원 제기로 무고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ㄱ경감에 대한 경찰 수사는 아직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다. 경찰청 감찰부서에서마저 “누가 봐도 보복성”이라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찰 내부에서 비슷한 유형의 보복은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 북부경찰서 여성 경찰관이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북부경찰서는 감찰도 없이 가족 돌봄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시간선택제 근무 중인 여성 경찰관의 최근 3년간 복무 상황을 모두 입증하라며 직무고발했다.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됐지만, 경찰서는 징계를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 4년 전 강원 태백경찰서에서 동료 경찰들한테 당한 집단 성희롱 피해를 신고한 여성 경찰 역시 유실물 관리 등의 책임을 물어 징계 처분을 받았다.
최근 관련 사건을 연달아 취재하면서 마주한 건 2차 가해가 만연한 현실이었다. “기자님한테 이런 말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 근태가 불량해서 주변 직원들이 같이 일하기 힘들어했어요.” “왜 주변에 ○○○ 편드는 사람이 많이 없는지는 취재해보셨나요?” 보복성 조처가 아닌지 취재를 시작하자 내부고발자에 대한 헐뜯기가 시작됐다. “그럼 왜 이전엔 상사로서 근태 관리를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가 있었다면 관리 책임도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라는 두루뭉술한 답만 돌아왔다.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경찰은 보복성 징계로 ‘조직의 쓴맛’을 보여준다. 현행법상 경찰 징계 사유에 근무 태만과 품위 손상 등의 조항이 추상적이고 광범위하게 규정돼 있어서다. 징계 의결권자의 의중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구조다.
서울청 감찰 결과를 통보받은 성동경찰서는 조만간 박인아 경위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다. 각종 범죄를 엄단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수사기관에서 징계권이 피해자의 입을 막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진실이 무엇이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 조직논리가 앞서는 모양새다. 이런 경찰이 다른 사건은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 신뢰받는 대한민국 경찰이 되기엔 아직 멀었다.
장나래 이슈팀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