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정형식 대전고등법원장(62·사법연수원 17기)을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보수 성향의 판사로 새로운 법 해석을 시도하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져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을 맡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자질과 덕목, 신망을 두루 갖추고 있어 헌법재판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더없는 적임자라고 판단된다”며 정 후보자 지명을 발표했다.
정 후보자는 지난 10일 퇴임한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의 후임 재판관으로 지명됐다. 헌법재판관은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지 않지만, 인사청문 절차는 거쳐야 한다.
정 후보자는 1988년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로 임관했고, 서울고법·수원고법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장 등을 거치며 35년간 법관으로 재직했다.
수도권 지역의 한 판사는 “판사로는 무난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법 해석을 시도하지 않는 성향이다. (법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와 비슷한 스타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정 후보자는 2018년 2월 ‘국정농단’ 뇌물 사건과 관련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논란을 일으켰다. 2심은 1심과 달리 이 사건을 ‘정경유착’ 대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을 ‘겁박한 사건’으로 정의하며, 경영권 승계 청탁 등 이 부회장의 핵심 혐의를 무죄로 봤다. 이로 인해 2017년 2월 구속돼 그해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이 부회장은 석방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 후보자의 2심 판결을 파기한 뒤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파기환송심은 2021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며 이 부회장을 법정구속했다. 이 부회장과 특검이 재상고를 포기해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지난 2013년 서울고법 형사6부 재판장으로 근무할 때에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항소심을 맡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 재판장으로 근무하던 2007년 3월에는 다국적 기업 국내 자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성희롱의 정도를 따지지 않고 단지 성희롱 사실만을 들어 해고한 것은 지나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한 바 있다. 반면 같은 재판부에서 2010년 1월 동성애를 금지하는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한 성소수자의 난민 신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성적 취향으로 난민 신분을 인정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은 국민을 분노케 했다”며 “기득권 수호 판결을 내렸던 정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