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3국은 현재 인구절벽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 세 나라, 한∙중∙일은 비록 역사적 궤적은 다르지만 급격한 사회적 쇠퇴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지난 10∼12일까지 사흘간 서울 동작구 중앙대에서 열린 이 대학의 독일유럽연구센터 창립 1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다른 과거, 같은 미래’ 제목의 첫날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신 교수는 우선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지금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20세기 후반까지 3국의 과거는 상당히 달랐고, 격전을 치르는 갈등도 적잖았지만, 세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암울한 미래는 너무나 똑같다”고 말했다.
한·중·일 3국은 오늘날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제 강국이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자 국방비 2위의 군사 강국이며, 일본 또한 국내총생산 세계 3위 경제 대국이자 대외순자산 규모 1위 국가다. 한국도 한때 두 나라로부터 속박당한 과거가 있었지만, 이를 딛고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 대국이 됐다. 세 나라 모두 놀라운 초고속 경제성장을 통해 경제 강국이 됐지만, 오늘날 사회적으로는 모두 ‘사회적 쇠퇴(Social Degradation)’를 보이는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게 신 교수 진단이다.
신 교수가 규정한 세 나라가 겪는 사회적 쇠퇴의 첫 신호는 저출산이다. 출산율이 인구규모 유지에 필요한 수준(인구 대체출산율 2.1) 이하로 떨어지는 구조적 변화를 보인 시기의 시작은 일본은 1950년대 말, 한국은 1980년대 초, 중국은 1990년대 초였다. 이처럼 저출산의 시작은 시차를 두고 각각 달랐지만, 세 나라 모두 지금 똑같이 ‘인구 절벽’을 겪고 있다.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중앙대 대신홀에서 열린 이 대학의 독일유럽연구센터 창립 10돌 기념 동아시아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창곤 선임기자
일본은 2005년부터 전체 인구가 감소한 데다, 2023년 올해 말엔 무려 80만명이 줄 것으로 예상한다. 합계출산율은 1.26명(2022년 기준)이다. 한국은 2019년부터 절대 인구가 감소했다. 2022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인 0.78명을 기록한다. 중국 역시 지난해부터 절대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2022년엔 중국 역사상 최저의 출산율인 1.09명을 나타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한국과 일본에서는 결혼을 적게 하는 데다 늦게 하고 아예 안 하는 비혼 비율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중국은 결혼은 더 늘고 있지만,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한·일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는 게 신교수의 설명이다. 같은 저출산이라고 해도 흐름이 사뭇 다르다는 얘기다.
저출산과 함께 동반돼 나타나는, 65살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고령화율(2022년 기준)에서도 일본은 29.1%로 세계 최고령사회다. 한국 또한 같은 해 17.5%로 초고령사회(고령화율 20% 이상)로 향하고 있고, 2025년에는 처음으로 20%를 넘을 전망이다. 중국도 지난해 처음으로 65살 인구가 2억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하는 등 고령화 사회(고령화율 7% 이상)에서 고령사회(고령화율 14% 이상)로 진입했다.
한국은 세 나라 가운데 특히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여 문제가 더 크다. 65살 인구가 이미 900만명을 넘은 한국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화 사회로 도달하는 데 7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영국(50년)이나 프랑스(39년), 미국(15년) 등 서구 국가는 물론 고령화 추세가 가파른 일본의 10년보다 더 빠르다.
자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의 빈곤율 비교
한·중·일 세 나라가 겪는 사회문제는 이런 ‘인구학적 급변’에 그치지 않는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새로운 빈곤층이 등장한 점에서도 같다. 소득분배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의 경우, 2021년 중국은 0.466을 기록했다. 일본은 0.334, 한국은 0.331이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이 갈수록 소득분배가 균등한 것을 나타내는데, 중국의 불평등이 특히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비슷하게 나타나는 노인들의 빈곤화 현상도 알려진 대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를 웃돈다. 중국은 19%(2020년 기준), 일본도 20%에 이른다. 서구 선진국 중 미국(23.1%)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선 이 비율이 15%대 이하다. 독일은 9.1%, 프랑스는 4.4%로 유럽 선진국은 대체로 10%대 미만에 그친다.
한중일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수, 2021년/중국은 2022년) 지표(OECD)
이런 사회문제는 자살률과도 연동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더욱 크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에서 가장 높은 2021년 기준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 24.1명에 이른다. 일본도 같은 해 15.4명으로 높은 편이다. 중국도 8.1명(2022년)을 기록하는 등 느는 추세다. 신 교수는 다만 “한국에선 자살자 가운데 빈곤 노인들이 많고, 일본은 아프고 실직한 중년층에서 많고, 중국은 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많다”며 “이는 누가 각 나라에서 가장 취약한가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서구국가에서는 이런 사회문제를 조세와 복지 정책을 통해 완화하거나 해결했다. 신 교수는 한·중·일 3국은 조세제도와 사회정책이 부실하고 특히 한국과 중국은 복지에 지출하는 돈도 적어 이들 문제의 심각성을 낮추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결론적으로 동아시아 3국은 공통으로 경제성장에만 관심을 가져 이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동아시아 3국은 똑같이 한 세대 내에 심각한 사회쇠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신 교수는 “보통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이런 어두운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