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신변보호(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신청한 피해자를 상대로 추가 피해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해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체크리스트 작성 사건 10건 중 7건이 성폭력, 스토킹, 교제폭력 등과 같이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젠더 폭력인 것으로 나타났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5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범죄유형별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등급별 현황’ 자료를 보면, 경찰이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사건은 통계 관리를 시작한 2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총 2만2182건으로, 스토킹과 가정폭력, 성폭력(강간, 강제추행, 디지털 성폭력 등), 교제폭력 등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전체의 약 74%(1만6453건)를 차지했다. 성별로 보면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은 전체의 약 86%(1만9078건)에 달한다.
경찰은 피해자가 신변보호를 요청할 경우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피해자 위험도를 ‘없음’ ‘낮음’ ‘보통’ ‘높음’ ‘매우 높음’으로 분류하고, 각 위험도 등급에 따라 112시스템 등록, 맞춤형 순찰, 스마트워치 지급, 민간경호 등의 안전 조치를 한다.
경찰이 추가 피해 위험성이 ‘매우 높음’으로 판단한 사건 비율은 살인 등 강력범죄가 가장 높았다. 범죄 피해자의 신변보호 요청에 따라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강력범죄 사건(141건) 중 위험성을 매우 높게 판단한 사건은 19%(27건)였다. 이어 ‘높음’ 42.5%(60건), ‘보통’ 31%(44건), ‘낮음’ 7%(10건), ‘없음’은 0%였다.
상해·폭행(35%)을 비롯해 가정폭력(38.4%)과 교제폭력(36%), 스토킹(34.5%) 사건의 경우, 추가 피해 위험성이 높다(‘매우 높음’+ ‘높음’)고 판단된 비율이 30%를 넘었으나, 성폭력 사건의 경우, 그 비율이 16.8%(‘매우 높음’ 0.66%+높음 16.2%)에 그쳤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이런 결과를 두고 “피해자 입장에선 경찰이 (체크리스트의) 어떤 항목에 표시를 했는지 알 수 없고, 경찰이 어떤 근거로 위험도를 판단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용혜인 의원은 “성폭력 사건도 관계성 범죄의 특성이 높기 때문에 제대로 된 위험성 판단이 필요하다”며 “범죄피해자 위험성 판단은 피해자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경찰은 보다 세밀하게 위험성 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위험도가 ‘없음’이나 ‘낮음’으로 평가된 사건은 대부분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건”이라며 “위험도가 낮더라도 대부분 112시스템 등록, 스마트워치 지급 등의 조처를 했다”고 해명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