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순호 당시 행안부 경찰국장. 공동취재사진
대학 운동권 시절 동료들을 밀고해 경찰에 특채됐다는 이른바 ‘밀정 의혹’을 받는 김순호 치안정감(전 경찰대학장·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강요 공작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인권단체에선 “변절해 가해자가 된 사람이 다시는 피해자 주장을 할 수 없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진실화해위는 31일 오후 제65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김순호 치안정감이 포함된 101명의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에 앞서 17일 제2소위원회에서도 위원간 전체 합의로 이 사건을 전체위원회에 상정했다. ‘밀정 의혹’과 별개로 대학생 강제징집 사건의 피해자로 보지 않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녹화공작 사업이란 신군부가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을 군에 징집한 뒤 교내 동향 등의 첩보를 수집하도록 강요한 일을 말한다. 김 치안정감이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1983년 강제징집된 뒤 학내 서클 동향 등을 보고했다는 의혹과 관련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존안자료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7일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밀정의혹 김순호 파면, 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순호 치안정감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 후보자로 오르던 지난해 8월 자신의 운동권 시절 밀정 의혹이 제기되자, 오히려 자신이 군사정권 시절 녹화사업의 피해자라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같은 해 11월29일 제46차 전체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1차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던 조종주(59) 강제징집 녹화 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은 “법으로는 어쩔수 었더라도 본인의 양심상 어떻게 변절해놓고 피해자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뻔뻔하다”면서 “가해자들이 피해자 자격을 얻지 못하도록 정치권이 진실화해위 기본법의 맹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추모연대)는 8월23일 진실화해위에 ‘김순호 경찰국장의 밀정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조사개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김 치안정감은 정부가 보유한 존안자료가 보도된 경위를 확인해달라며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지난 8월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기도 했다. 이에 지난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1일 언론사와 자주 접촉했던 김 치안정감의 대학 동기의 자택과 차량,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중이다.
김 치안정감은 밀정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지난해 12월 치안감(행안부 경찰국장)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대학장을 지냈다. 치안정감은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으로, 경찰청 내부에선 7명에 불과하다. 지난 26일 경찰청 고위직 인사가 단행되면서 경찰대학장에서 물러난 김 치안정감은 현재 휴가중으로, 올해 말 정년퇴임한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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