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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밑바닥 구형에 집행유예 반복…중대재해법 힘빼는 검찰·법원

등록 2023-10-25 05:00수정 2023-10-25 13:25

판결 나온 중대재해 사건 7건 분석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불과 3개월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추가 유예’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어렵게 기소된 사건에서도 ‘솜방망이’ 구형과 판결이 반복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과 검찰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한겨레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나온 총 7건의 판결문을 모두 분석해보니, 사업주(경영책임자)에 대한 선고 형량이 대체로 징역 1년∼1년6개월에 그치고 그마저도 단 1건을 제외하면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돼 실형을 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죄의 기본 형량(징역 1년∼2년6개월)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 법원과 검찰이 법정형 하한을 징역 1년으로 정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1월 법이 시행된 뒤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총 23건(지난 8월 기준)이며 이 가운데 1심 이상 판결이 나온 사건은 모두 7건이다.

유일하게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한국제강 사건’이다. 지난 4월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재판장 강지웅)는 하청 노동자가 1.2톤 방열판에 깔려 숨진 산재 사건에서 성아무개 한국제강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한국제강에서 10개월 전에도 또 다른 산재 사망사고가 있었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수차례 처벌을 받은 전력을 중요하게 언급했지만, 형량은 법정형 하한선(징역 1년)에 그쳤다. 이 사건은 2심에서 항소기각된 뒤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의 ‘양형 이유’를 살펴보면 낮은 형량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경영책임자에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들을 보면, 법원은 ‘피해자 과실’을 크게 고려했다. 하청 노동자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철근 다발에 맞아 숨진 ‘건륭건설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 6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5단독 김윤석 판사는 사고 보름 전 “크레인 작업 시 철근을 1줄로만 묶어 인양하면 위험하다”는 위험성평가표가 작성됐지만 회사가 아무 조처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양형 이유’에서는 “신호수 역할을 하던 피해자 과실도 사고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점”을 피고인의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원청 대표에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문은영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경영책임자가 노동자의 실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안전 대책을 짜라는 것인데 ‘근로자 과실’이나 ‘관행’을 감경 사유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가 법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관행처럼 집행유예가 이뤄지고 있다. 양형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7건의 판결문에서 ‘유족과의 합의’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감경 사유다. 심지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전과가 있는데도 ‘유족과의 합의’로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도 있다. 지난 6월 인천지법 형사10단독 현선혜 판사는 하청 노동자가 공사현장에서 낙하물에 맞아 숨진 ‘시너지건설 사건’에서 원청 대표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내렸다. 원청 시너지건설 대표는 2014년과 2017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고, 이 회사엔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전무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들이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 “피해자 유족과 원만히 합의”했다며 원청 대표의 법정 구속을 면해줬다.

박다혜 변호사는 “중대재해는 단순히 피해자에 대한 범죄가 아닌 공공안전을 해친 중대한 범죄인데, 법원은 ‘합의 여부’를 형벌권 행사의 기준으로 삼아 사실상 사인 간의 문제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유족과의 합의’를 감경인자로 쓸 것이 아니라 ‘합의가 안 된 경우’를 가중인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구형도 솜방망이기는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7건의 사건 가운데 5건에서 원청 대표에 징역 2년, 법인에는 벌금 1억5천만원의 구형을 했다. 앞서 산재 사망사고가 있었던 한국제강 사건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전과가 있었던 시너지건설 사건 모두 징역 2년을 구형해 사실상 ‘정찰제 구형’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대검찰청이 스스로 정한 중대재해법 구형 기준(기본구간 2년6개월∼4년)에도 못 미친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피고인의 유족과의 합의 여부와 유족의 처벌불원 여부, 사고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형을 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대재해 사건에서 경영책임자가 유족과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중대재해 사건의 기소가 지연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에만 법 적용 대상이 되는 중대산업재해가 전국에서 229건 발생했는데, 지난 8월 말 기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23건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기업이 연루된 사건은 지난해 4월 하청 노동자가 금속파이프에 끼어 숨진 ‘현대스틸산업 사건’이 전부고, 나머지는 소액 건설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중소업체 사건이다.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의 성과 자체는 적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손익찬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으로 원청과 원청 대표도 처벌받기 시작했다는 점과 법 제정 당시 일각의 우려와 달리 7건의 선고가 나오는 과정에서 ‘위헌 논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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