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SPL 끼임사 노동자 1주기
“우리 선빈이 때 바뀌었다면 없었을 재해 반복
선빈이의 죽음 잊지 않고 같은 일 더는 없도록”
“우리 선빈이 때 바뀌었다면 없었을 재해 반복
선빈이의 죽음 잊지 않고 같은 일 더는 없도록”
2022년 10월15일 에스피엘(SPL) 평택 공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박선빈씨의 모습. 어머니 전아무개(52)씨가 제작한 액자와 친구들이 놓고 간 사진 앨범 등이 봉안당 한켠에 놓여 있다. 장현은 기자.
반복되는 ‘그날’
일터에서 기계가 된 사람
지난 13일 박선빈씨 어머니가 천안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된 선빈씨의 봉안함을 바라보고 있다. 장현은 기자
지난 13일 천안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선빈씨 어머니 모습. 어머니 전아무개씨는 선빈씨의 죽음이 “아직도 이해할 수 없고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훔쳤다. 장현은 기자
7개월 불린 이름 ‘선빈’
에스피엘(SPL)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은 박선빈씨에게 어머니 전씨가 쓴 편지 전문을 전한다.
편지는 선빈씨의 기일인 10월15일 선빈씨 유해가 있는 천안의 한 추모공원의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을 통해 부쳤다.
사랑하는 나의 반쪽이었던 딸 선빈아!
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며칠이면 1년이 되어 가는구나.
평생 잊을 수도 잊혀져서도 안 될 그 날. 2022년 10월15일 새벽 6시20분.
그전엔 우리 형편이 좀 어렵고 남들이 모를 집안 사정이 소소하게 있었을 뿐, 모두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평범함이란 생각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
그런데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청천벽력같은 일이……
지금도 너무도 생생하게 그날의 기억들이……
믿기지 않는 말을 하며 전화 한 통을 받지만 “혜연이 어머니 되시죠? 인사사고로 빨리 회사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믿기지 않지만 아침 일찍 전활 받고 부랴부랴 동생을 깨워 택시를 타고 너가 다니던 그곳 SPL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진지도 모른 채 불안함과 초조함, 슬픔 등 모든 불길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기사님께 목적지도 제대로 알려드리지도 못했었다.
널 출근도 몇 번 시켜줬던 그곳을 말이다.
회사에 도착해보니 경찰관들이며 직원들이 허둥지둥하며 엄마와 동생을 현장에 데려가려 할 때, 한 경찰관이 “사고현장이 너무 참혹해서 들어가실 수 없다”는 말에 엄만 경비실에 주저앉아 그저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보같이… 우겨서라도 현장엘 직접 가보았어야 하는 건데…
그래야 선빈이 너가 얼마나 힘든 조건에서 일을 해야만 했고 왜 인사사고까지 갔어야 했는지, 그리고 마지막 인사라도 했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도 그때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엄마가 너무 바보 같고, 무책임했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 누구도 이렇게 사고가 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 그냥 매스컴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었는데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선빈이 너의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 문제가 많았던 회사였다는 걸 사고가 난 후에야 알게 되었고, 이 바보 같은 엄마는 대기업이라 믿고 너의 입사에 축하까지 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큰 착오를 저지르고 말았구나. 그런데 하필이면 왜 너가 그 희생양이 되었어야 했던 건지…
해답을 찾을 수 없어 그 고통과 슬픔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구나.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얻는 대가가 죽음이라면 그 누가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하고 싶을까?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힘든 일을 하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
얼마 전 똑같은 사고가 같은 계열사에서 또 일어났었단다.
10개월 만에 말이다. 너의 사고 당시 대국민 사과를 빌미로 안전경영에 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결정했던 SPC 회장, 하지만 또 다시 반복되는 사고들…
엄마가 널 보내는 마지막 날 한겨레 기자분께 인터뷰할 때 “제발 제 딸이 마지막이었음 좋겠다”라고 했건만 어떻게 늘 그때뿐인지 모르겠구나.
누굴 믿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조차 믿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해결할 수는 있는 건지도 의문이 든다.
‘선빈아! 엄마 딸로 태어나서 고생만 하다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버린 너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고, 사랑한다.’ 말이라도 해주었어야 하는 건데……
너무나도 한이 되어 남는다.
거기다 사고 당시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왜 혼자서 그 힘든 일들을 도맡아서 해야 했던 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가고 평소에 너가 했던 말들이 생각이 나더라.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 자기만 시킨다고…’
젊다고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걸 무단히 버텨내며 일했던 너가 너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안타까울 뿐이다.
힘들다는 말을 수십번 했는데도, 그만두라고도 몇 번을 했었건만…
더 강력히 퇴사를 강요하지 못한 엄마가 또 한 번 죄인이 되는구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혜연아!
엄마는 네가 태어나서 너무 행복했었고, 기쁨 그 자체였단다. 어릴 땐 애교로 힘듦을 씻어 주던 그런 살뜰하고, 엄마 삶의 원동력이었고, 표정도 다양하고, 웃음도 많았던 세상에서 젤로 예쁜 나의 딸이었단다.
커서는 가족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 조금씩 상황이 좋아지는 중이었고, 엄마에게 고민도 털어놓고, 쇼핑도 같이하고, 시장도 같이 다니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자매 사이 같다며 부러워하기도 했었지. 그랬었는데……
엄마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 만약에 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엇무엇을 하지 않았더라면… 등등…
자꾸 만약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더라구. 그만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지. 왜냐하면 우리는 엄마와 딸 사이보단 진정한 친구 사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다정할 때도, 싸울 때도 모든 걸 함께 한 그런 소중한 나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버렸는데 어찌 편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겠니.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내 딸 선빈에게 죄가 되는 느낌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게 고통 그 자체란다.
모두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힘들고. 더 보고 싶고. 아직까지도 꿈이라고 믿고 싶은 맘이 간절하단다.
딸!!
24년을 함께 보냈기에 너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구나. 마저 정리하지 못한 어릴 적 앨범들(무려 큰 거 4개권)이며, 솜씨 좋은 너가 만들어 놓은 그림이며, 이곳저곳 너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정작 딸 너만은 이곳에 없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버릴 수도 치울 수도 없구나. 이것들마저 없다면 너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아 엄마가 살아 있는 한 곁에 두고 싶구나.
사랑하는 내 딸 선빈아!!
엄마의 딸로 태어나 주어서 너무 고마웠고, 많은 사랑 베풀지 못해 미안했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지 못해 기 죽어 살게 해서 더욱더 미안했고, 행복한 모습 보이지 못해 너에게 죄책감을 안겨줘서 제일 미안했었다.
하지만 밝고 씩씩하게 열심히 살아가려 최선을 다한 것에 너무 감사했었어.
선빈이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더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늘 엄마 마음엔 선빈이 너가 온전히 다 자리하고 있으니 편안한 곳에서 놀기만 하고 너가 좋아하던 것들만 하면서 엄마 만날 날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해.
너무 보고 싶고, 너무 사랑하고, 너무너무 미안하다.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
-세상에서 딸 선빈(혜연)이를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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