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21일 저녁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정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가 주요 행사를 열 경우, 당일 예정된 전시가 있더라도 임시휴관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만찬으로 갑작스럽게 휴관을 결정하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대관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까지 나오자, 아예 ‘휴관이 가능하다’고 내부 기준을 변경한 것이다. 야당은 청와대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정부가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비판했다.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설명을 들어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국립박물관 전시품 관람규칙’의 휴관 사유에 ‘국가 주요 행사 개최 등 그밖에 박물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추가했다. 그전까지 시설 보수, 전시물 교체 등을 휴관 사유로 인정했는데, 범위를 대폭 넓힌 것이다.
문체부 산하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도 지난해 11월 대관 규정을 개정해 대관 가능 시설 목록에 ‘기타 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시설’을 추가했다. 기존에는 강당과 강의실, 일부 야외 부대시설만 대관이 가능했다. 두 차례에 걸친 규정 개정 덕분에 정부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대부분 시설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빌려 쓸 수 있게 됐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 5월 청와대 운영 규정을 개정해 사전 신청 등 아무 제약 없이 대통령실이 청와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바 있다.
문체부가 박물관 관련 규정을 바꾼 것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공식 만찬 장소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낙점되면서 갑작스레 휴관해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만찬이 5월21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불과 사흘 전인 18일 누리집에 휴관 공고를 올리고 21일 관람 예약분을 일괄 취소했다. 정부 대관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예약이 취소된 것은 전례 없던 일이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대관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규정상 박물관 대관은 자체 교육이나 행사, 전시 유물과 시설물 유지 관리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데, 한-미 정상회담 공식 만찬은 이러한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었다. 권력기관의 일방적 지시로 박물관이 만찬장으로 불쑥 동원됐다는 점도 비판 받았는데, 개정 규정도 국가 행사를 위해서라면 사전에 충분한 양해 없이 박물관을 동원하는 행태를 막기 어려워보인다.
임종성 의원은 “정부가 이미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빈 만찬 등의 행사를 열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제약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됐다”며 “최소한의 원칙도 없이 일을 추진하다 보니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입게 됐다”고 비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쪽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가 주요 행사를 박물관에서 열 수도 있지만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라’는 주문이 있어 관련 규정을 개정한 것”이라며 “우선 원하는 날짜와 시간 등으로 예약을 옮겨드리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