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경.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대통령실이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청와대 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규정을 개정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청와대 전면 개방 취지에 역행하는 조처라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대통령실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관람 운영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운영규정)을 개정해 ‘대통령실과 관련된 장소사용에 대해서는 사용 후에 사용 내역을 즉시 통보함으로써 장소사용 허가 신청과 장소사용 허가가 이뤄진 것으로 본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개정 전에는 대통령실도 장소사용 허가 신청서를 문체부 청와대관리활용추진단에 공문으로 제출해 단장으로부터 허가를 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사후 통보만 하면 이런 절차를 모두 생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대통령실에 청와대를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준 셈이다.
야당은 대통령실의 청와대 사용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 장치가 무력화됐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국빈 방한이나 그에 준하는 외교 사절단이 참석하는 국가적 행사 △대통령실 주최 또는 주관 행사 등 청와대 운영규정상 장소허가 기준에서 벗어나 청와대를 사용하더라도 막을 방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사후 통보 방식도 구체적으로 규정돼있지 않아 불분명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대통령 경호 등의 특수 사항을 고려하더라도 사후에는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개정된 규정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대신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정부 방침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도 대통령실 행사에 청와대 영빈관, 본관 등이 쓰이면서 정기휴관일 이외에도 일부시설에 관람이 제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와대가 개방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을 제외한 236일 중 대통령실이 청와대 영빈관 사용신청을 한 일수는 110일에 달한다.
이병훈 의원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요란하게 청와대를 개방,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해놓고, 영빈관, 상춘재 등을 다시 뺏어간 것은 청와대 개방 공약이 실패했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문체부의 청와대 관람규정 개정으로 대통령실은 청와대 시설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조원에 육박하는 혈세가 들어가는 대통령실 이전은 국민에게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공약도 지키지 못한 채 청와대 사유화라는 결과만 낳았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이날 보도설명자료를 내어 “청와대 장소사용허가와 관련한 조항을 개정한 것은 보안사항에 해당할 수 있는 국빈·외교행사와 국가안전보장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일정·동선 등과 관련된 사항의 보안을 고려할 때 사전신청에 의한 사용 허가가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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